1992년 英파운드화 대폭락 ‘검은 수요일’문건 공개

  • 입력 2005년 2월 11일 1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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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적인 정쟁’과 ‘잘못된 예측’의 대가는 컸다.

영국 역사상 최악의 금융위기로 불리는 1992년 9월16일 파운드화 폭락 사태. 이른 바 ‘검은 수요일’ 사태로 당시 허공에 날린 영국인의 세금은 33억 파운드(현재 환율로 약 6조3000억원)나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 재무부는 9일 올해부터 도입한 정보공개법에 따라 1992년 ‘검은 수요일’의 관련 문서들을 공개했다.

문서가 공개되자 더 타임스 등 영국 언론들은 당시 사태가 경제논리보다 정치논리를 앞세운 집권 보수당 내의 세력 다툼과 경제 예측의 실패에서 초래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보수당 내 갈등=1989년 10월 니겔 로슨 재무장관이 사임했다. 파운드화를 유럽 통화와 연계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펴온 그는 이에 반대하는 마거릿 대처 전 총리와 번번이 갈등을 빚었다.

대처 총리는 로슨 장관의 후임으로 존 메이저를 기용했으나, 차기 총리를 염두에 둔 메이저도 대처 총리와 대립했다. 당시 메이저 재무장관도 영국이 유럽 환율조정체제(ERM)에 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79년 출범한 ERM은 당시 유럽공동체(EC)가 유럽 단일통화권으로 가기 위한 전 단계로 유럽 각국의 통화가치를 연계하기 위해 만든 장치.

메이저 전 장관은 시장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영국이 ERM에 가입하지 않으면 금리를 내릴 수 없다고 버텼다.

대출금리 인하로 지지도 회복을 노린 대처 총리는 마지못해 ERM 가입 주장을 받아들였다.

영국은 1990년 10월 1파운드 당 2.95마르크의 환율로 ERM에 가입했고, 다음달 대처 총리의 사퇴로 메이저는 총리에 올랐다. 하지만 당시 영국은 대처 총리의 주장처럼 ERM에 가입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는 것이 지배적 분석이었다.

▽잘못된 경제 예측의 결과= 파이낸셜 타임스는 “당시 영국 경제가 1980년대 경제호황이 쉽게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예측하지 못한 것은 재무부의 중요한 실수”라고 지적했다.

유럽 외환시장에서는 1992년 초부터 ‘전망 좋은’ 마르크화를 사기 위해 파운드화를 팔아 치우는 현상이 벌어졌다. 파운드화의 가치는 1마르크 당 2.75파운드 아래로 떨어졌다. ERM 가입을 주도했던 메이저 총리는 파운드화 사수에 나섰다.

영국은행(BOE)은 280억 파운드를 투입해 환율 방어에 나섰으나 시장의 투매를 막지 못했다. 결국 영국은 ERM 탈퇴를 선언했지만 이미 투기세력이 막대한 이익을 챙긴 뒤였다. 국제 금융계의 ‘큰 손’ 조지 소로스는 이 과정에서 10억 달러를 번 것으로 알려졌다.

검은 수요일 사태로 인기가 급전직하한 보수당은 1997년 선거에서 패한 뒤 아직도 재기하지 못하고 있으며, 영국은 여전히 유럽단일통화에 가입하지 않는 등의 후유증을 낳았다고 더 타임스는 전했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검은 수요일:

1992년 9월 16일 파운드화의 가치 하락을 견디다 못한 영국이 유럽 환율조정체제(ERM) 탈퇴를 선언한 날. ERM은 유럽공동체(EC)가 유럽 단일통화권으로 가기 위한 전 단계로 회원국의 통화가치를 연계하기로 한 장치다. 영국은 1990년 파운드당 2.95마르크의 환율로 ERM에 가입했으나 1992년 초부터 파운드화 가치가 급격히 떨어졌다. 위기를 느낀 영국중앙은행(BOE)은 금리 인상과 외환 매수로 환율 방어에 나섰으나 폭락사태를 막지 못하자 ERM 탈퇴를 선언했다. 이 사태로 영국은 33억 파운드의 손해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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