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안후이(安徽) 성 황산(黃山) 시에 있는 왕직의 묘비 가운데 일본인명 등 일부 내용이 지난달 31일 밤 난징(南京)의 한 대학교수(37)와 그의 친구 대학교직원(42)에 의해 지워졌다.
이들은 “민족 배신자의 묘를 일본인들이 정비하고 비석을 세운 것은 중국인을 우습게 보는 것”이라고 비석 훼손 동기를 현지 언론에 밝혔다.
이후 중국 누리꾼(네티즌) 사이에서는 “속 시원하다”는 찬성론과 “왕직의 해상무역이 명나라 때 자본주의의 싹을 틔운 측면을 무시한 편협한 민족주의”라는 반대론이 치열하게 맞서고 있다.
안후이 성 출신인 왕직은 일본 나가사키(長崎) 현 후쿠에(福江) 항을 근거지로 생사, 유황 등을 밀무역하면서 왜구를 이끌고 중국 각지를 약탈했다. 명나라 정부는 “투항하면 공식 무역을 허가해 주겠다”고 속여 귀국시킨 뒤 그를 처형했다. 후쿠에상공회의소 회원들은 1999년 5월 황산의 묘를 참배할 때 황폐한 묘를 정비하기로 하고 돈을 모든 뒤 황산 시와 협의를 거쳐 2001년 4월 묘를 정비하고 묘비를 세웠으며 최근에는 보수작업도 했다.
도쿄=조헌주 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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