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황유성]자오쯔양 ‘끝나지 않은 연금’

  • 입력 2005년 1월 31일 17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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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쯔양(趙紫陽)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베이징(北京) 자택 대문이 지난달 29일 장례 직후 다시 굳게 잠겼다.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입구에는 아직도 수십 명의 공안이 깔려 출입자들을 통제하고 있다.

유족이 자오 전 총서기의 유해를 화장한 뒤 바바오산(八寶山) 혁명공원묘지에 안치하지 않고 집으로 유골을 다시 옮기면서 나타난 상황이다. 이제 죽은 자에 대한 연금이 새로 시작된 것이다.

고인 사후 13일간 재평가 문제를 두고 평행선을 달렸던 유족과 당국의 대립을 생각하면 장례는 제2라운드를 위한 시작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당국도 장례를 매끄럽게 처리하고 싶었던 듯하다. 정치국원급 이하가 참석하리라던 당초 예상과 달리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권력서열 4위인 자칭린(賈慶林)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이 영결식에 나타나 유족을 위로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1989년 정치풍파 과정에서 엄중한 과오를 범했다”고 지적했지만 “개혁개방 전기(前期) 당과 인민을 위해 유익한 공헌을 했다”는 유화적 내용을 앞부분에 담았다.

하지만 그것이 한계였다. 정치안정을 최우선시하는 현 지도부로서는 고인에 대한 재평가가 새로운 혼란의 시발이 될 것을 우려한 듯하다. 1976년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와 1989년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의 장례가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어떤 결과로 나타났는지를 봤기 때문이다.

부정부패에 반발해 점차 파괴력과 빈도를 더해 가는 각종 시위와 폭동도 우려되는 대목이었다. 더구나 톈안먼 사태 이후 권력을 장악한 장쩌민(江澤民) 세력이 건재한 반면 재평가를 해야 할 후진타오(胡錦濤) 체제는 아직 취약한 것도 변수다.

장례식 당일 운구는 시민의 외출이 없는 새벽에 이루어졌다. 바바오산 일대에는 조문객보다 많은 경찰이 삼엄한 경계를 펼쳐 마치 계엄령을 방불케 했다. 중국 당국의 상황 인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자오 전 총서기는 생전에 자신의 처지를 1936년 시안(西安)사변의 주역 장쉐량(張學良)에 빗댔다고 한다. 장쉐량은 시안사변 후 1986년까지 50년간 연금 상태로 있다가 끝내 재평가를 받지 못한 채 2001년 하와이에서 숨졌다.

자오 전 총서기의 딸은 장례에 앞서 “국민과 역사가 아버지를 공정하게 평가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개관논정(蓋棺論定)’이라는 말이 있다. 관 뚜껑을 닫은 뒤 죽은 사람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내려진다는 뜻이다.

유족이 현실을 알면서도 극단적 조치를 취한 것은 ‘관 뚜껑은 닫았어도(蓋棺)’ ‘죽은 자에 대한 평가(論定)’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당한 재평가를 받지 못할 바에야 유골을 집에 모시는 것이 생전의 뜻을 욕되게 하지 않는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고인에 대한 재평가는 중국에 진정한 정치개혁이 이뤄질 때까지로 미뤄졌다. 그의 장례도 그때까지 ‘미완’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 지도부는 당장 6월 4일 톈안먼 사태 16주년에 다시 나타날 자오 전 총서기의 ‘망령’을 걱정해야 할 것 같다.

황유성 베이징 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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