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한 집단일수록 집단사고에 빠질 위험
‘약속대련’식 레드팀으론 의사결정 못 바꿔
실용 의지인지, 정치 전략인지 지켜볼 일
이은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서양 격언 중 “두 사람의 지혜가 한 사람보다 낫다(Two heads are better than one)”는 말은 이른바 집단지성의 핵심을 담고 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듯, 서로 다른 지식과 경험,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의견을 자유롭게 공유하고 평가함으로써 각자 독립적으로 내리는 것보다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단지 머릿수가 늘어난다고 결정의 질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심리학자 어빙 재니스가 정립한 ‘집단사고(groupthink)’라는 개념은 집단이 조화와 합의를 우선시한 나머지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되는 현상을 지칭한다. 이러한 문제는 특히 리더의 권위가 강하고 구성원들이 동질적이며, 외부의 비판적 시각이 차단된 환경에서 쉽게 나타난다. 구성원들이 갈등을 피하기 위해 의문이나 반대 의견을 억제한 결과, 집단 전체가 마치 ‘하나의 머리’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집단사고가 문제인 이유는 집단이 스스로 자신들의 오류 가능성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은 지나친 자기 확신 탓에 경고 신호나 불리한 정보들을 폄하하고 무시한다. 따라서 다각도에서 위험을 평가하거나 대안을 고려하지 않은 채 신속하게 합의에 도달하게 된다. 일견 효율적인 의사결정처럼 보이지만, 파괴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1986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 사고가 대표적인 사례다. 일부 기술자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발사 일정 지연에 대한 압박과 조직 내 합의 분위기가 혹한 속 발사를 강행하도록 만들었고, 결국 승무원 전원이 숨지는 예견된 참사로 이어졌다.
집단사고는 무능한 집단만의 특징이 아니다. 결속력이 강하고 서로 신뢰하는 유능한 집단일수록 기존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집단사고에 빠질 위험이 크다. 팀워크가 좋을수록 (회의 후 형님, 누나와 밥도 먹고 노래방도 가야 하니)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려는 심리가 작동하기 마련이다. 반대 의견을 내는 소수는 분위기 파악 못 하고 발목을 잡는 밉상으로 찍히기 십상 아니던가. ‘레드티밍(red teaming)’은 이 같은 사회적 압력을 배제해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반대 의견이 적극적으로 표출되도록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다.
구체적으로 레드팀은 집단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기존 계획이나 결론을 의도적으로 공격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일례로 인공지능(AI) 분야에서는 편향되거나 유해한 답변을 유도하는 모의 공격을 수행하여 AI 모델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방법으로 널리 활용된다. 레드팀의 목적은 현재의 판단이 얼마나 취약한지 엄격하게 검증해 잠재적 문제점을 드러내는 데 있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가정을 의심하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고려하게 만들어 맹점을 노출시킴으로써 실패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줄일 수 있다.
결국 레드팀의 효과는 인지적 다양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인지적 다양성은 배경이나 외형의 차이가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 문제를 바라보는 틀, 경험에서 비롯된 관점의 차이를 포괄한다. 레드팀은 인지적 다양성을 의도적으로 설계해 결정에 반영하는 절차적 도구라 할 수 있다. “다르게 생각해도 괜찮다”는 양해의 수준을 넘어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원칙 아래 보다 견고하고 신뢰할 만한 결정을 추구하는 것이다.
한편 2001년 ‘유럽 사회심리학 저널’에 소개된 연구는 레드팀의 한계를 시사하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집단 의사결정에서 소수 의견을 가진 사람이 꿋꿋이 소신을 피력하는 경우와 이 사람에게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 역할을 맡겨 소수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를 비교했다. 별다른 지시를 하지 않은 통제집단에 비해 이 두 조건의 참여자들은 더 활발하게 논의했고, 본인 역시 자극을 더 많이 받았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동일한 논거와 주장을 제시했음에도 ‘찐’소수의 경우에만 실제로 의사결정의 질이 향상됐다. 누군가 비판적 소수 역할을 맡아 연기하는 ‘약속대련’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얘기다.
최근 보수 정당 출신 장관 후보자의 적격성을 두고 논란이 거세지만, 이는 논외로 하고 “파란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권한을 가졌다고 그 사회를 다 파랗게 만들 순 없다”, “빨간색도 여전히 대한민국 국민이고, 주권자”라는 대통령의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불확실성이 크고 실패 비용이 높은 상황일수록 레드팀(공교롭게도 출신 정당의 상징색이 빨간색이다)의 효용은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도가 반대 진영의 문제의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정책 결정의 질을 제고하려는 국정 최고책임자의 의지 표명인지, 아니면 통합과 실용의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한 고도의 정치 행위인지는 시간이 말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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