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청대는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

  • 입력 2005년 1월 31일 16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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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침략전쟁 주모자로 처형된 전범을 합사해놓은 야스쿠니(靖國)신사가 최근 일본 사회의 국수주의화 바람을 타고 흥청대고 있다.

최근에는 개인과 기업의 기부금 등 총 88억엔(약 880억원)을 들여 화려하게 개축한 일반인 참배소, 참집전(參集殿)이 완공돼 참배객의 발길로 붐비고 있다.

도쿄(東京) 한복판 야스쿠니신사는 토요일인 29일,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 경내 주차장에 대형버스 30여대가 있을 만큼 성황이었다. 번호판은 미야기(宮城), 후쿠시마(福島), 이바라키(茨城), 나가오카(長岡), 마쓰모토(松本) 등 도쿄에서 차로 편도 2~4시간 걸리는 곳에서 온 단체참배객들이다.

방문객들은 자살을 강요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자살특공대원들을 애국열사로 묘사한 전쟁기념관, 유취관(遊就館)을 찾은 뒤 본전 오른쪽에 새로 단장된 참집전을 구경했다. 대개 본전 앞에서 참배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개별 참배하는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다.

전쟁 말기 총알과 대포알을 만들 쇠가 없자 철거됐던 신사 입구의 도리이(鳥居)가 높이 25m, 무게 100t의 일본 최대 모습으로 재등장한 것이 1974년. 이로부터 30여년간 세력을 확장해온 국수주의 세력은 이제 '순국 영령' 250만여명을 제사 지내는 야스쿠니신사를 당당하게 노골적 활동 무대로 '점령'하고 있었다.

본전으로 향하던 방문객들은 일장기와 구 일본 해군기를 걸어놓고 서명운동을 벌이는 일단의 사람들을 보고 발길을 멈춘다. '영령에 답하는 모임'이란 국수주의 단체 회원들.

"중국의 야스쿠니 내정 간섭을 이대로 방치하면 안됩니다. 일본의 야마토(大和) 정신을 모독하는 겁니다. 여기 서명해주세요."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 회원은 기자가 일반인처럼 접근해 일본군 무용담을 그린 영화 비디오 등을 들추다 몇 개를 사면서 말을 붙이자 이렇게 말했다.

전범 합사를 슬며시 물어보자 이 여성은 "모두 조국을 위해, 동포를 위해 숨진 애국 영령들인데 무엇이 잘못이냐"고 소리를 높였다. 식민통치하 동원돼 숨진 2만여명의 한국인, 대만인을 합사해놓은 일에 대해서도 "당시 일본군인으로 일본을 위해 숨진만큼 모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강변했다.

아시아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내용의 '대동아 해방전쟁'이란 책 등을 전시 판매하고 있었으며 일제하 황국신민 양성을 목적으로 한 '교육 칙어'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전단도 나눠주고 있었다. 난징(南京)학살이나 두 명의 일본군 장교가 '100명 참수 경쟁'을 벌였다는 당시 일본 신문의 보도 등을 부인하는 전단도 보였다.

"애국지사들한테 대입 수험생 아들의 합격을 빌러 왔지요." 한 60대 여성은 국수주의 단체회원들을 격려한 뒤 본전으로 향했다. 경내에서 전단을 나눠주거나 선전 활동을 금지하는 안내판이 있었지만 국수주의 단체의 활동은 예외 취급이었다.

임진왜란때 왜군을 격파한 내용이 기록된 조선시대 '북관대첩비'는 최근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곳으로 치워졌다. 야스쿠니 본전 옆의 숲 속, 그것도 철책 안에 있는데다 안내판도 없어 여간해서는 발견하기 어렵다. 전리품이라지만 안내문 하나 세워놓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스스로 '장물'을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

'육사 60기생 일동' '37사단 전우회' '해군 구축함 고즈에 생존자 일동'

경내를 가득 메운 벚나무에는 기념식수 표찰이 제국주의 미망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역사의 망령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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