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폰이 惡을 퍼뜨린다”…사우디 ‘디지털 保-革갈등’

  • 입력 2004년 11월 23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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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가 달린 휴대전화(카메라폰)를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세력이 팽팽히 맞서는 상황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벌어지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23일 “사우디 정부가 올해 3월부터 카메라폰 수입 및 판매를 전면 금지했지만 최근 일부 정부 부처 장관들이 카메라폰 금지 철폐를 외치면서 카메라폰 사용이 사회문제로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종교지도자와 보수세력은 “카메라폰을 통해 여성의 사진이 은밀히 유통되면서 사회문제가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통상, 재정, 내무, 기술부 장관들은 “카메라폰 사용은 시대적 흐름”이라며 파드 국왕에게 카메라폰 규제 철폐를 요청하고 있다.

정부의 카메라폰 단속 방침에도 불구하고 사우디 사회에서는 이미 카메라폰이 공공연히 유통되고 있는 실정이다.

7월에는 한 결혼식장에서 여성 하객이 카메라폰에 찍히자 폭력사태가 발생해 일부 하객들이 병원으로 실려 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카메라폰으로 찍은 듯한 강간 동영상까지 유통돼 엄격한 이슬람사회가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한 여대생은 친구의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가 퇴학조치를 당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10월 사우디의 최고 종교기관인 ‘선(善)의 증진과 악의 금지를 위한 위원회’가 나서 “카메라폰이 ‘악과 음란’을 퍼뜨린다”며 카메라폰 사용을 금지하는 ‘파트와(이슬람법 해석)’를 발표했다.

하지만 4개 부처 장관들의 의견은 다르다. “카메라폰은 TV나 인터넷과 같은 필수품이 됐기 때문에 사용을 금지하기보다는 국민들에게 적절한 사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장관들은 “최근 생산되는 휴대전화는 거의 대부분 카메라가 달려 있다”며 “만약 사우디가 카메라 없는 휴대전화만 수입하면 수출국이 특별 제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수입 단가가 올라간다”는 지적도 했다.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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