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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11월 2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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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블루라군’ 부근은 해만 떨어지면 발길이 끊기는 변두리 상업지구다. 그런 곳이 1일 오후 10시가 넘어서면서 잔칫집 분위기로 바뀌었다. 공화당의 유세가 시작된 것이다. 여가수가 살사댄스곡을 불렀고, 스페인어만 쓰는 연사가 잇따라 올라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4년을 더 맡기자”고 목청을 돋웠다.
골수 공화당원인 리카르도 무니앤(71)은 쿠바계. 그는 “민주당이 하는 게 뭐냐. 겨우 나 같은 쿠바인에게 1년에 단돈 몇 백 달러 쥐어주면서 약자를 보호합네 하는 게 전부 아니냐”고 했다. 1961년 카스트로에게 쫓겨 고향을 떠난 망향자의 설움을 감안하더라도 선거를 ‘분풀이의 장’으로 생각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300여 유권자의 환호성은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가 ‘줏대 없는 변덕쟁이’로 묘사될 때 제일 크게 터져 나왔다. 비판과 비방의 경계를 넘나든 연사는 오후 10시20분이 지나 예정에 없이 ‘깜짝 등장’한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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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장 주변은 지나가는 차량의 경적음과 운전자의 괴성 때문에 소란스러웠다. 자원봉사자로 대로변에서 홍보물을 흔들고 있던 아메리칸 에어라인 항공사 직원은 “우리(공화당원)끼리 있을 때는 케리 후보를 원색적으로 비판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에 없던 일”이라고 했다.
이날 오후 공항 부근에서 만난 마이애미 경찰청 소속 앨릭시언 스티븐스 순경은 1∼2%에 불과한 부동층이다. 그는 “왜 아직 지지후보를 결정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이라크에서 미군 1000명이 죽었다지만, 마이애미에서만 하루에 얼마나 많이 죽어 나가느냐. 또 케리 후보가 변덕쟁이라지만, 나도 ‘아니다’ 싶으면 생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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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1시를 넘긴 시간, 도시 반대편 마이애미비치는 여유로움이 넘치는 별세상이었다. 오션드라이브를 따라 늘어선 노천카페에서 주민들은 바닷바람과 라틴음악을 안주 삼아 맥주잔을 기울였다. 은퇴한 중산층이 많이 사는 민주당 텃밭지역이다.
러스티 존슨(32)은 비컨호텔 부근 식당의 매니저다. 지난달 31일 두 시간을 기다려가며 컴퓨터 투표를 마쳤고, 가슴에 케리-에드워즈 스티커를 붙이고 주문을 받을 정도로 열혈 민주당 지지자다. 그에게 일부러 “장시간 줄서기, 구식 펀치카드 투표, 우편배달 문제로 생긴 4년 전의 개표 지연은 제3세계 국가를 떠올리게 한다”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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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줄서는 것에 익숙하다”고만 대꾸했다. 다만 “신사인 척했던 사람들이 다른 ‘신사’와 입에 거품을 물며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미국의 미래는 아니겠지’ 하는 생각은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선거 이후를 낙관했다. ‘생각이 다름에 합의했다(agree to disagree)’는 문화가 있는 만큼 대부분의 미국인은 선거결과에 승복하고 평상심을 회복할 것이라는 것이다.
최대 접전지 플로리다의 하루는 이렇게 저물어갔지만, 어느 누구도 ‘우리가 승리한다’고 장담하는 유권자를 만날 수 없었다. 그만큼 박빙이란 이야기다.
마이애미=김승련특파원srkim@donga.com
▼오하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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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이오주 주도(州都) 콜럼버스는 평온한 모습이었지만 집 앞에 꽂힌 지지후보 팻말이 다른 도시보다 유난히 많았다. 이번 대선의 최대 격전지로 ‘정치도시’가 됐음을 실감케 하는 모습이었다.
1일 낮 콜럼버스 교외의 민주당 사무실에선 여성 자원봉사자 20여명이 전화통에 매달려 있었다. 애니타 도린은 “하루 3시간씩 유권자들에게 전화를 건다”고 말했다. 벽 한쪽에는 ‘유권자 집을 방문할 경우 문 앞의 잔디를 밟지 말 것’ 등 주의사항이 적혀 있었다.
동네사람들에게 돌릴 ‘케리 배지’를 얻으러 온 패티 주르겐슨에게 “너무 늦은 것 아니냐”고 묻자 “투표일까지 아직도 하루가 남았다”고 응수한다. 자원봉사자 조앤 프래터는 “유권자가 필요로 한다면 투표장까지 차량 편의도 제공한다”면서 “우리에겐 17만명의 자원봉사자가 있다”고 자랑했다.
콜럼버스 시내 한복판에 있는 공화당 사무실의 전화 부대는 2명뿐이었다. 그러나 5분 거리의 또 다른 사무실에선 30여명이 끊임없이 전화를 돌려대고 있었다. 60대 자원봉사자는 전화기를 붙든 채 “부시 대통령이 전화를 하란다”면서 마치 옆 사람과 중요한 대화를 나누는 듯한 수법을 썼고, 10대 자원봉사자는 선거 쟁점 설명에 자신이 없는 듯 써놓은 것을 계속 읽어 내려갔다.
오하이오주 조지 W 부시 캠프의 공보담당자 에런 맥리어는 “일요일 하루에만 주 전역에서 27만통의 전화를 했고 16만 가구를 방문했다”면서 “1일까지 8만5000명의 자원봉사자가 300만통의 전화를 걸었고 74만 가구를 방문했다”고 말했다.
텍사스에서 원정 온 공화당 자원봉사자들의 가정방문을 따라갔다. 존 케리 후보 지지 팻말을 붙여놓은 집은 그냥 지나쳤다. “이 동네는 리버럴인가봐”라고 농담을 나누면서 지지후보를 밝히지 않았거나 부시 대통령 지지 팻말을 붙여놓은 집을 찾아 문을 두드렸다. 양측 자원봉사자들이 숱하게 문을 두드려대는 바람에 상당수 주민들이 지지후보 이름을 문 밖에 내걸어놓을 수밖에 없는 듯했다. 반(半)공개투표를 치르는 셈이다. 그 결과 지지후보가 누구냐에 따라 ‘부시 하우스’ ‘케리 하우스’라고 부를 정도로 동네가 두 동강 났다.
오하이오주에선 2일 주 헌법 개정안도 투표에 부쳐진다. 동성결혼이나 동성결합을 불허하는 결혼보호 조항에 관한 투표다. 오하이오주 농촌지역의 개신교 신자들이 이 조항을 지지하고 있다. 평소 정치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이들이 이 조항에 찬성표를 던지기 위해 이번에 대거 유권자 등록을 했다. 부시 진영은 “이번엔 교회가 움직인다”며 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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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민주당은 저소득층과 소수이민자들의 유권자 등록을 지원했다. 공화당측은 “이 과정에서 부적격자가 투표권을 얻었다”면서 법적대응에 나서 주 전체의 개표가 더뎌질 가능성이 커졌다.
더구나 오하이오주는 전체의 4분의 3이 투표용지에 펀치카드로 구멍을 뚫는 방식으로 투표하기 때문에 2000년 플로리다주에서처럼 무효표를 둘러싼 논란이 우려되고 있다.
콜럼버스=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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