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日후쿠이현 오미나토神社35대 마쓰무라 신관

  • 입력 2004년 8월 3일 19시 27분


코멘트
마쓰무라 다다노리 신관이 가보로 전해지는 고구려 활과 시조의 이름이 적힌 홀을 들고 한일고대 교류사의 무대인 바다가에 서 있다. 고래를 탄 선조가 한반도에서 도착했다는 오시마와 동해가 뒤로 보인다. -후쿠이(일본)=조헌주특파원
마쓰무라 다다노리 신관이 가보로 전해지는 고구려 활과 시조의 이름이 적힌 홀을 들고 한일고대 교류사의 무대인 바다가에 서 있다. 고래를 탄 선조가 한반도에서 도착했다는 오시마와 동해가 뒤로 보인다. -후쿠이(일본)=조헌주특파원
“이쪽으로 곧장 가면 한국이지요.”

마쓰무라 다다노리(松村忠司·68)씨는 자택 2층 다락방 문을 열고 해송 너머 ‘정원’을 내다보며 말했다. 그가 가리키는 ‘정원’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 놓인 망망대해.

그는 일본 서북해안 후쿠이(福井)현 사카이(坂井)군 미쿠니(三國) 마을의 오미나토(大溱)신사 제35대 구지(宮司). 구지란 신사의 최고위직으로 제사를 맡은 신관(神官)이다.

“‘가라쿠니(고대 일본에서 한반도를 지칭했던 말)’에서 선조가 처음 도착한 곳이 저 오시마(雄島)이지요. 고래를 타고 건너왔다고 합니다.”

오시마는 해안에서 300m쯤 떨어진 둘레 2km의 작은 섬. 신사가 관리해 온 성소로 울창한 숲 안에 신사 건물 몇 채가 있을 뿐 인가는 없다.

한반도 도래인의 후손이란 ‘사실’은 증명할 수 있는 것인가. 마쓰무라씨는 자택 옆 ‘보물창고’로 가 겹겹의 문을 조심스레 열며 무릎을 꿇고 합장한 뒤 목불과 사자탈 등을 내보였다. 오시마를 지켜 온 ‘수호신’이요, 그의 가보다.

복장과 수염 모양, 머리에 쓴 관이 ‘한국풍 그대로’라는 목불은 대략 1000년 된 것으로 재료는 느티나무라는데 얼핏 보기엔 흙덩이라는 느낌이 들 만큼 고색창연하다.

눈이 왕방울만한 사자탈은 ‘고려사자’란 이름과 기록으로 보건대 고려에서 전래한 것을 복제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신사를 지켜 온 역대 조상의 이름이 적힌 문서를 찾아냈다. 개조(開祖)는 도요나가(豊長). 개조의 것이라는, 나무로 된 홀(笏)은 귀에 흠이 나기는 했지만 ‘豊長 正伍位(정오위·벼슬 품계)’란 음각 글자가 또렷했다. 7세기쯤의 것으로 추정된다.

“저에게는 35대조됩니다. 하지만 원래 조상이 한반도에서 건너온 것은 훨씬 오래전이겠지요.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35대이지만 실제론 50대는 되지 않을까요.”

그는 혹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며 고구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활도 꺼내 왔다. 길이 160cm가량으로 웬만한 완력으로는 휠 수 없을 만큼 장대한 것이었다. 시위는 삭아 없어졌지만 나무로 만든 그 활은 지금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튼튼했다.

재일 한국인에 대한 유무형의 차별이 심한 일본사회. 그 속에서 마쓰무라씨처럼 한반도계임을 밝히며 활동하기란 쉽지 않다. 시립미술관장이자 신사의 최고 신관으로 지역 문화계의 중심에서 활동하기에 더욱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그는 한반도계임을 밝히는 데 주저함이 없다. 미술관 학예사로 20여년 일해 누구보다 고대 한반도로부터의 문화 전래를 잘 알기 때문이다. “한국을 통하지 않고서는 오늘의 일본문화를 이해할 수 없지요.”

오늘날 한일 관계를 푸는 열쇠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를 그는 이 짧은 말로 시사했다. 문외한이라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그는 인터뷰 내내 일본 다도(茶道)의 창시자로 꼽히는 센리큐(千利休)도 한국계였을 것이라는 등 양국의 문화 교류사를 열심히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관장으로 있는 후쿠이시립미술관에서 한국화가 초대전을 갖거나 한일 관계 연구자들 모임인 ‘조선실학연구회’를 자택에서 개최하는 등 한일 문화교류를 적극 지원해 오고 있다. 일본 내 한국계 작가들과도 활발하게 접촉하고 있다.

그는 10여년 전부터 매년 한 번 꼴로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유능한 한국 작가를 세계에 널리 소개해 주고 싶어 한다. 한국에 가면 작가들과의 교류 틈틈이 해인사 팔만대장경 등 문화유적도 돌아보고 있다. 9월에도 방한해 한국 미술계 관계자들을 만날 계획이다.

“선조의 땅 한국에서 다만 2, 3년이라도 살며 이쪽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여태까지 저쪽만 바라보았으니까요. 아직은 이곳에 할 일이 조금 남아 있지만 아들이 결혼하고 나면 시간이 나겠지요.”

사진을 찍기 위해 오시마로 건너오자 그는 그 옛날 선조의 자취를 추억하는 듯 가보인 홀과 활을 쥔 채 한동안 하늘을 응시한다. 언뜻 ‘한국’ ‘일본’ 구별이 없던 역사 속으로 빨려 들어가 시간이 홀연 정지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후쿠이=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마쓰무라 다다노리는▼

1936년 후쿠이현 미쿠니(三國) 출생

1961년 고쿠카구인(國學院)대학 졸업(종교사 전공)

1966년 후쿠이현립 도서관 근무

1973년 후쿠이현립 미술관 학예사

1989년 오미나토(大溱)신사 제35대 구지(宮司)

1993년 후쿠이현립미술관 퇴직 후 4년간 오시마(雄島)에서 수도

1997년 후쿠이시립미술관장(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