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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5월 23일 17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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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만2000, 9만3000, 9만3250. 더 없습니까?” 경매장 직원이 외치는 소리에 물건을 내놓은 주인의 낯빛이 변했다. 90만달러(약 10억8000만원)는 너끈히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10분의 1 수준에 낙찰됐기 때문.
물건의 정체는 영화 ‘쥬라기공원’에 등장하는 사나운 육식공룡 티라노사우루스의 뼈 화석이다.
사실 티라노사우루스가 경매장에 등장한 것은 2000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 화석은 화석발굴대원 수 헨드릭슨이 인디언보호구역 내에서 발견한 사상 최대의 화석이었다. 270kg에 달하는 머리뼈를 포함해 85% 정도가 완벽히 보존돼 있었다. 당시 낙찰가격은 무려 836만달러(약 100억원). 월트디즈니와 맥도날드가 구입해 시카고자연사박물관에 기증했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BK21 임종덕 연구교수(척추고생물학)는 “공룡 화석은 명확한 평가 기준이 없어 부르는 게 값이지만 대체로 희귀성과 골격완성도, 그리고 학술적 가치에 따라 좌우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형에 해당하는 시조새 화석은 현재까지 8마리만 발견된 상태여서 가격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비싸다. 최근 경매장에 등장한 티라노사우루스 역시 20∼30마리만 발견돼 희귀하긴 하지만 20%밖에 복원이 안됐기 때문에 가격이 이전보다 크게 떨어진 것. 한편 중국에서 종종 발견되는 길이 1∼2m의 초식공룡 프시타코사우르스는 90% 이상 보존된 골격이라 해도 흔한 종류이기 때문에 수천만원대에서 낙찰된다고 한다.
문제는 지구 생명의 역사를 알려주는 이 소중한 화석들이 사냥꾼들과 호사가들의 욕심 때문에 학자와 일반인에게 공개될 기회조차 사라질 수 있다는 점.
임 교수는 “매년 정기적으로 화석 엑스포가 미국에서 2회, 독일과 일본에서 1회씩 열리는데 비싼 값에 화석을 팔려는 사냥꾼과 이를 개인적으로 소장하려는 호사가들로 북적거린다”고 말했다. 특히 국가적인 관리체계가 허술한 아프리카에서 다량의 화석이 유럽으로 유입돼 엑스포에 등장하고 있다고.
임 교수는 “학술적으로 희귀한 화석이 박물관이 아닌 개인에게 팔리는 것을 몇차례 목격했다”며 “취미로 또는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여기는 풍토가 사라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한국은 2000년 개정한 ‘문화재보호법시행규칙’에 따라 국내 화석을 사고파는 행위 자체가 법으로 금지돼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도 불법으로 규정돼 있지만 공룡 화석이 외국으로 반출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우리도 마냥 안심할 수만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훈기 동아사이언스기자 wolf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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