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롄잔 지지자들 “반쪽총통 물러나라” 밤샘시위

  • 입력 2004년 3월 22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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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쭝퉁샤타이(總統下臺·총통 물러나라).’

‘롄쑹자유(連宋加油·롄잔 쑹추위 힘내라).’

22일 새벽 안개비가 내리는 가운데 불 꺼진 총통부 건물에는 쉴 새 없이 이런 글자의 푸른 레이저 광선이 쏘아졌다. 천수이볜 총통의 당선을 인정하지 않는 광선총 세례였다. 그 때마다 총통부 광장 앞에 모인 야당 지지자들은 같은 구호를 외치며 손에 든 경적과 나팔을 울리고 국기와 야당 깃발을 흔들어댔다.

전날 밤 야당의 롄잔 총통 후보와 쑹추위 부총통 후보는 “그동안의 성원에 가슴이 아플 뿐”이라며 “내일 출근하거나 학교에 가야 하니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지만 지지자들은 내리는 비를 꼬박 맞으며 움직이지 않았다.

국민당 소속 마잉주(馬永九) 타이베이(臺北) 시장이 두 차례나 연단에 올라 “여러분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집시법에 정해진 시위 시간이 지났으니 이제 그만 해산하라”고 간절히 호소했지만 이들은 “부후이(不會·그럴 수 없다), 부후이”만 외쳐댔다.

이틀 전부터 시위현장을 지켰다는 기계부품 수출업체 직원 린윈푸(林雲富·47)는 “부정으로 총통 자리를 차지한 사람을 쫓아내지 않고는 대만의 미래가 없다”면서 “나라가 우선이지 돈이 우선이 아니다”고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70대의 한 노인은 “천수이볜 총통이 중국 본토 출신인 ‘와이성런(外省人)’을 적으로 돌리고 중화민국을 부정했으니 그가 설령 당선됐다 하더라도 중화민국 총통이 될 자격이 없다”면서 “대만 출신 ‘번성런(本省人)’만 데리고 총통 노릇하라”고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역시 와이성런이라는 천신이(陳信義·59·전직 공무원)는 “여당이 떳떳하다면 즉각적인 재검표 요구를 못 받아들일 이유가 없는 것 아니냐”면서 “번성런이 아닌 사람은 모두 이민갈 수밖에 없다”고 거들었다.

극단적인 지역감정으로 얼룩졌던 이번 선거로 받은 가슴속 상처가 너무나 깊어 보였다.

오전 5시경 날이 희뿌옇게 밝아오면서 일부 시위자들이 직장과 학교로 돌아갔지만 대부분은 가족들이 가져다 준 도시락 등으로 허기를 때우며 자리를 지켰다.

이날 낮 롄 후보의 부인 팡위(方瑀) 여사가 처음으로 총통부 광장에 나타나 “고생이 많다”며 군중을 위로하자 시위대의 기세는 다시 올랐다. 퇴근 시간이 되면서 직장과 학교에 갔던 야당 지지자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선거에 승복하지 못하는 야당 지지자들의 시위는 타이베이뿐만 아니라 타이중(臺中) 가오슝(高雄)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계속됐다. 일부 지역에서는 시위대와 경찰이 격렬히 충돌했고 어떤 지역에서는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타이베이=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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