泰 ‘CEO 총리’ 탁신 …아세안의 리더 야심

  • 입력 2003년 10월 19일 19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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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태국 방콕에서 개막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탁신 시나왓 태국 총리(54·사진)가 ‘아세안의 리더’로 부상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21개 태평양 연안국 정상과 각료들이 모이는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지도력을 각인시키겠다는 게 탁신 총리의 구상이다.

‘아세안 리더’ 자리는 곧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된다. 아세안 역내 그룹을 대표해온 마하티르 모하마드 말레이시아 총리가 이달 말 정치무대에서 퇴장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

아세안에서 가장 부자 나라인 싱가포르의 고촉통 총리는 아직 ‘국부(國父)’로 불리는 리콴유 수석장관의 그늘에 가려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필리핀의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은 연초 터진 군부 쿠데타 수습 등 국내 정치적인 입지가 불투명하다. ‘제3세계의 맹주’인 대국 인도네시아는 수하르토 전 대통령이 축출된 뒤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현 대통령이 들어섰지만 이렇다 할 카리스마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2001년 취임 일성으로 ‘CEO 정권’을 외쳤던 탁신 총리는 올 8월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꾼 돈을 다 갚고 경제회복을 선언했다. 외환위기에 찌들었던 태국 경제의 올해 예상 경제성장률은 6%. 이 같은 자신감은 아시아채권펀드를 창설하고 2012년까지 아세안 역내 공동시장을 결성하자는 선언으로 이어졌다. 태국의 네이션지는 “아세안 지도자의 바통이 탁신 총리에게 넘어왔다”고 보도했다.

테러와의 전쟁 및 이라크 재건사업 협조 때문이기는 하지만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까지 APEC 회의 참석차 미국을 떠나면서 탁신 총리를 “매우 능력 있고 과단성 있는 지도자”라고 치켜세웠다.

태국 정부가 APEC 회의에 자국 출신인 수파차이 파니차팍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을 초청하지 않은 것도 탁신 총리의 ‘아세안 간판주자’ 구상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부총리와 상무장관, 국회의원 등을 지낸 수파차이 총장을 탁신 총리가 견제하는 것 아니냐는 게 현지 언론들의 해석이다. 수파차이 총장은 내년 임기가 끝나면 제1야당 민주당의 유력한 차기 총재 후보로 꼽히고 있어 ‘정적 1호’가 될 공산이 크다.

CEO 총리답게 성과 지상주의를 내세운 탁신 총리는 민주적 지도자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독재자이면서 대중 인기에 영합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그가 진정 수하르토 전 대통령과 마하티르 총리의 뒤를 이어 역내 지도자로 부상할 수 있을지 여부는 이번 APEC 회의 결과와 태국 경제의 ‘롱런(long-run)’에 달려 있다는 평가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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