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高 저지 - 이라크 지원’ 주고받기?…美-日 17일 정상회담

  • 입력 2003년 10월 13일 19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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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17일 일본 방문을 앞두고 엔화 환율 문제가 이라크 지원 문제를 제치고 미일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

당초 부시 대통령의 방문 이유는 이라크 자금 지원과 자위대 파병 문제지만 일본 정부의 성의 표시로 미국이 원하는 수준에서 결정됐기 때문에 일본의 ‘숙원’인 엔고 저지가 급부상한 것.

미 정부는 달러화 약세를 바라는 업계를 의식해 ‘환율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원칙론을 고수하고 있지만 국제무대에서 미국을 적극 돕고 있는 일본의 요구를 대놓고 무시할 수도 없는 처지다.

국제금융계는 미일 정상회담이 지난달 22일 열린 서방선진 7개국(G7) 재무장관 회의에 이어 주요국 통화의 환율 흐름을 좌우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부시 친구는 고이즈미뿐’…일본의 압력=각국이 이라크 파병을 놓고 진통을 겪는 것과 달리 일본은 일찌감치 자위대 연내 파병을 결정했다. 이라크 분담금도 미국이 ‘수십억달러’를 요구한 것에 화답해 내년 15억달러를 시작으로 2007년까지 4년간 총 50억달러 이상을 내놓기로 했다.

장기 불황으로 재정 상태가 예전 같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50억달러는 일본으로서도 상당한 출혈을 각오한 규모. 일본 언론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자신을 텍사스 목장으로 초대해준 ‘친구’를 위해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큰 선물을 했다고 해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정부의 속내는 이라크 협조에 대한 반대급부로 미국으로부터 환율 문제에서 양보를 얻어내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라크 지원-엔고 저지’ 바터 가능할까=엔-달러 환율은 8일 달러당 110엔대가 무너진 뒤(엔화가치 상승) 108엔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금융전문가들은 미국과 유럽의 협조가 없으면 엔화가 연말이면 달러당 100∼105엔까지도 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자동차 전자 등 주요 업종의 수출채산성이 적자로 돌아선 상태에서 달러당 100엔선까지 무너지면 일본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일본 정부는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강한 달러’ 정책에 변함이 없다”고 발언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엔고 저지를 위한 양국의 공동 개입이 어렵다면 원론적 선언만으로도 투기자본의 공세를 제어하는 효과가 크다는 것.

5월 미일 정상회담에서는 부시 대통령의 강한 달러 발언으로 엔화가 미미하나마 하락세를 보인 바 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는 내년 대선을 의식해야 할 처지여서 환율 문제에서 운신의 폭이 크지 않은 상황. 일각에서는 부시 대통령이 고이즈미 총리를 배려해 일본의 시장개입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지나갈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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