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발급 '피폭자 건강수첩' 받았지만 무료진료 등 '그림의 떡'

일본 히로시마시가 한국 피해자들에게 발급한 피폭자 건강수첩. -대구=이권효기자

‘피폭자 건강 수첩’은 해방된 지 58년이 지난 지금 한국인이 일본법의 적용을 받는 비정상적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건강 수첩은 일본의 피폭자 원호법에 따라 1980년대부터 한국에 거주하는 피폭자들에게도 발급됐다. 현재 전국 2200여명(등록자 기준)의 피폭자 가운데 절반가량이 이 수첩을 발급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12월 곽귀훈(郭貴勳·경기 성남시)씨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재판에서 승소한 것을 계기로 올해부터 기존의 무료 진료와 함께 건강관리 수당(월 3만4030엔)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무료 진료를 받기 위해 일본까지 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이야기. 히로시마(廣島)시가 발급한 수첩을 15년째 가지고 있는 김성룡(金聖龍·76·대구 달서구 두류동)씨는 “오가는 경비가 만만치 않은데다 말까지 잘 통하지 않는 등 불편한 점이 많아 일본에서 진료하기는 어렵다”며 “수당이라도 받을 기대감에 소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강관리 수당도 실제 지급될지 아직 확실하지 않다. 일본 정부는 한국 피해자들에게 4월부터 지급한다고 통보했지만 8월 현재까지 전혀 지급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수당 지급 판결 이후 이 수첩을 발급받으려는 국내 피해자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일본은 피해자 2명의 보증을 요구하고 11가지 심의항목을 넣는 등 절차를 까다롭게 해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 정부는 피폭자 건강 수첩 발급에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고 개인에게 맡겨두고 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 대구경북지부장 이호경(李鎬景·64)씨는 “피해자들이 수당이라도 받을 마음으로 가해자 국가에 가서 온갖 수모를 겪으며 신청을 하는 것을 보면 눈물이 난다”며 “우리가 어느 나라 국민인지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