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政-經 갈등’ 경제에 불똥

  • 입력 2003년 7월 23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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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연속 성장세를 유지해온 러시아 경제가 정부와 재계의 갈등으로 흔들리고 있다.

이달 초 플라톤 레베데프 메나테프은행 회장의 구속과 최대 석유재벌인 유코스의 미하일 호도로프스키 회장의 검찰 소환으로 정-경 갈등이 시작된 후 러시아 주가지수인 RTS지수는 지난주 말까지 3주 동안 18%가 떨어졌고 2200만유로(약 300억원)의 자금이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갔다.

급락하던 주가와 루블화 가치는 21일 게르만 그레프 경제개발통상 장관이 재계와 외국인 투자자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더 이상의 극단적 조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 후 조금 진정됐다.

그러나 정부와 재계의 대립은 계속되고 있다.

22일 러시아산업기업가연맹(RSPP) 등 경제단체들은 “시장개혁 후 기업이 얻은 경제적 이득을 보장해 달라”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그동안 민영화와 사유화를 통해 빠른 속도로 기업을 키우는 과정에서 일어났던 불법활동에 대한 ‘사실상의 사면’을 요구한 것이다. 경제단체의 성명에는 이번 정부의 대기업 ‘탄압’이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위협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일부 인권단체도 가담했다.

탈세와 기업 이권을 둘러싼 청부살인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의 표적이 되고 있는 호도로프스키 회장도 “모든 법적인 조치를 통해 회사와 구속된 임직원들을 보호할 것”이라며 정부에 계속 맞서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그는 “우리의 미래가 전체주의로 가느냐, 안 가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고 푸틴 정권을 비난하면서 기업에 대한 탄압이 계속될 경우 러시아시장에서 대규모 자본 이탈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다른 대기업인 노르니켈의 블라디미르 포타닌 회장도 “(이번 사태가) 국내총생산(GDP)을 2배로 늘리고 빈곤을 극복하겠다던 푸틴 대통령의 약속을 손상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경제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러시아시장에 대한 투자심리를 위축시켜 올해부터 예정된 대형투자계획들이 무산되거나 지연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영미계 에너지 메이저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은 올해 러시아에 67억5000만달러(약 7조9720억원)를 투자할 예정이었으며 이번 사태의 당사자인 유코스는 연말까지 러시아 3위의 정유사인 시브네프티와 합병해 세계 4위의 에너지 메이저로 발돋움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그러나 유코스에 대한 검찰 수사와 함께 시브네프티 대주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 추코트카 주지사도 감사원의 내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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