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금리시대]<2>日개인자산 국외 탈출

  • 입력 2003년 6월 18일 17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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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민의 ‘일본 이탈’이 점차 본격화되고 있다. 은행 정기예금이나 국채 수익률이 ‘0’에 가깝게 떨어지는 등 ‘초저금리’ 현상을 벗어나기 위해 보수적인 일본인들이 해외투자를 선택하고 있는 것. 재테크 잡지와 신문 재테크면은 해외 채권 및 주식 투자 상품으로 장식되고 있다. 금융자산은 줄고 노후는 불안하고…. 일본인들의 고민과 대응을 소개한다.》

“금융자산의 50%는 뉴질랜드달러 표시 채권에 투자하고 나머지 50%는 금(金)을 사 두었다.”(시그나인터내셔널투자자문 다카마쓰 이치로 시니어 포트폴리오 매니저)

“엔화 표시 예금이나 국채에는 한 푼도 남겨두지 않고 모두 중국 베트남 한국 대만 등 성장성이 있는 발전도상국 기업의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공익법인컨설팅협회 구도우 게이지 대표)


일본 국민의 ‘일본 이탈’이 점차 본격화되고 있다. 일본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외화자산(주식과 채권 및 예금)은 작년 말 현재 16조엔(약 160조원·기관투자가 등 제외). 아직 전체 금융자산의 1.1%밖에 안 되지만 1년 전보다 40% 이상 늘어날 정도로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연 0.015∼0.03%, 10년짜리 국채 수익률도 연 0.5%로 떨어져 더 이상 일본 안의 예금이나 채권만으로는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1000만엔(약 1억원)을 1년 동안 은행에 맡기면 이자가 1500∼3000엔밖에 안 붙는다. 세금을 떼고 나면 택시요금(기본요금이 600엔)밖에 남지 않는 ‘초저금리’의 탈출을 위해 해외투자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엔화가 싫다, 밖으로 밖으로…=‘외화로 자산을 지켜라’ ‘디플레에 지지 않는 자산전략-유망 투자처는 외화·중국주식·금’ ‘외화자산에 투자 가속’…. 요즘 일본의 재테크 잡지와 신문 재테크면은 해외투자로 장식되고 있다.

이토 고이치 라이프플래닝클럽(LPC) 대표는 “일본의 국가 빚이 700조엔을 넘어 국내총생산(GDP)보다 1.3배나 많아짐에 따라 국가가 빚을 갚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타나고 금리가 급락해 일본 탈출이 본격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과다한 국가 빚을 해결하기 위해선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나 엔화 약세 및 증세(增稅)가 필요한데 모두 엔화 자산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금융청에 따르면 일본 투자자(개인+기관투자가)가 지난해 해외 주식과 채권에 투자한 돈은 23조3400억엔. 1년 전보다 4배나 늘어난 규모다. 개인이 매월 외화자산에 투자하는 돈만도 2000억엔에 이른다.

고쿠사이(國際)투신이 판매하고 있는 글로벌소브린펀드는 1조5000억엔어치나 팔렸다. “환율이 바뀔 때마다 약간씩 손해를 보는 위험은 있지만 매월 연 3∼4%의 높은 수익을 분배해줘 생활비로 쓸 수 있기 때문”(니혼게이자이신문 마에다 마사다카 증권부 편집위원)이다.

씨티그룹 프라이빗뱅킹의 하세가와 겐이치 마케팅본부장은 “금융자산의 70%를 달러채권, 20%는 호주달러채권에 투자하고 나머지 10%는 현금으로 갖고 있다”며 “금리가 높고 통화 강세를 나타내는 국가의 채권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 금융자산이 줄고 있다=금융자산의 50∼60%를 은행 예금으로 갖고 있을 정도로 보수적인 일본 사람들이 위험한 해외투자에 나서는 것은 금융자산이 줄어드는 탓이다. 일본의 개인금융자산은 작년 말 현재 1422조엔. 1년 전에 비해 17조엔(1.2%) 줄었다. 감소 규모가 미미하지만 2001년에도 9조엔(0.6%) 줄어든 데 이어 2년째 감소했다.

이 같은 개인금융자산 감소는 통계 작성을 시작한 후 처음 있는 일. 10년 이상 계속된 장기불황으로 근로소득이 줄어든 데다 초저금리 때문에 노후를 위해 쌓아 두었던 목숨과 같은 금융자산을 쓸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일본의 가계저축률(개인기업 포함)은 2001년에 6.6%로 떨어졌다. 90년대 초 13∼14%, 2000년 9.3%였다. 작년에는 경제성장률이 낮아 저축률이 더 낮아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와카미투신의 사와카미 아쓰토 사장은 “경제성장률이 높았던 과거에는 예금금리도 높아 예금 적금만 해도 시간이 지나면 자산이 늘어났지만 저성장 경제에서는 금리가 0%에 가까워 예적금만으로는 자산이 감소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은행 마스나가 레이 금융홍보중앙위원장도 “일본 경제는 60년대 12% 성장에서 10년마다 절반 수준으로 낮아져 2000년대(2000∼2010년)에는 0.7% 정도 성장할 것”이라며 “저성장에 따른 금리 하락으로 위험자산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많아지는 만큼 금융 투자교육을 강화해 잘못된 투자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쿄=홍찬선기자 hcs@donga.com

▼고민많은 30∼40대 '투자공식' ▼

금융자산을 모으고 그것을 운용하는 것은 연령대에 따라 다르다. 일본 스미토모기초연구소의 이토 요이치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자산운용 자문의 초점을 30, 40대에 맞춘다. 금리는 거의 제로에 가깝고 부동산 값이 떨어지는 자산디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있어 어떻게 해야 노후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가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하는 세대이기 때문. 그는 30, 40대에게 연 2% 이상 수익을 낼 수 있는 주식에 적극 투자하라고 강조한다. 0.015%에 불과한 정기예금에 넣어 두어서는 자산을 늘리기는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줄어들 우려가 큰 탓이다. 금융자산의 40%를 주식에 투자하되 이 중 10%는 외국 주식에 투자한다.

20%는 외화표시 채권을 산다. 내외 금리차가 10배 이상 나는 데다 엔화 가치가 떨어질 우려가 있는 만큼 위험 분산과 수익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 40%가량은 현금으로 보유하며(예금해도 금리가 워낙 낮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음) 좋은 투자기회를 기다린다.

30대 미만의 젊은이들은 자신에게 투자하는 게 좋다. 20대의 금융자산은 평균 251만엔에 불과하다. 이 돈으로 여러 곳에 나누어 투자하는 것은 관리 비용만 크게 할 우려가 있다. 외국어를 배우거나 경영대학원을 다니는 등 자신의 미래가치를 높이는 데 쓰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60대 이상은 안정적 수익이 중요하다. 수익을 높이려고 위험한 주식 등에 투자했다가 자칫 잘못해 원금을 잃으면 만회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예금이나 적금에 넣어 두는 것이 좋다.

도쿄=홍찬선기자 hcs@donga.com

▼연금-보험 "비상" ▼

일본의 ‘제로 금리’는 연금과 생명보험을 믿지 못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금리 하락으로 고객에게 약속한 수익을 낼 수 없게 되자 보험료를 올리거나 연금 및 보험금 지급 규모를 줄이려 하고 있는 탓이다.

일본생명보험의 한 부장은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이 무너져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연금과 생명보험마저 줄어들 수밖에 없어 노후생활에 대한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흔들리는 연금=일본의 연금은 대부분의 국민이 가입하는 기초연금으로 국민연금과 기업이 국가를 대신해 운용해 오던 후생연금으로 나누어진다.

경기침체가 10년 이상 장기화되고 금리 하락과 고령화 등으로 연금 운용이 어려워지자 올해부터 후생연금 운용을 정부에 반환하는 기업이 급증하고 있다. 4월 말까지 연금 운용을 반환한 기업은 500개에 이른다.

일본 정부는 2004년부터 연금 보험료를 인상하고 연금 지급 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올리는 한편 연금 지급 규모도 줄이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금리 하락으로 연금의 예정이율을 연 5.5%에서 3%로 떨어뜨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

닛코애셋매니지먼트 관계자는 “연금 운용에 부담을 느껴 2001년 10월부터 미국의 401k 같은 확정갹출형 기업연금이 도입됐지만 3월 말 현재 361개사만이 시행하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또 확정갹출형 기업연금의 운용도 대부분 예금 및 저금(35.1%), 공사채투자신탁(16.4%)에 집중돼 있고 주식은 1.6%에 불과해 수익률을 높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역금리에 시달리는 생명보험=고객에게 주기로 약속했던 예정이율을 낮추는 문제가 최대의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생보사들이 90년대 초에 예정이율이 연 5.5%짜리 보험을 팔았는데 금리가 급락해 역금리에 시달리며 경영 위기에 몰려 있는 탓이다.

계약자 대표의 75% 이상(주주총회에서는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정부의 승인을 얻어 예정이율을 낮출 수 있다. 다만 대표자회의에서 예정이율을 의결했더라도 총계약자의 10% 이상이 이의를 제기하면 예정이율을 바꿀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역금리로 생보사가 파산하거나, 예정이율 하락에 반대해 해약한 뒤 새로 보험에 드는 것보다 예정이율을 낮추는 게 유리해 울며 겨자 먹기 식의 동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금융청에 따르면 1983년에 30년 만기로 가입한 양로보험의 예정이율을 지금 5.5%에서 3%로 낮추면 만기에 받는 보험금은 13%가량 줄지만 보험회사가 파산하면 28%나 줄어든다. 도쿄엘렉트로닉스의 한 직원은 “노후에 받게 될 보험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릴 수밖에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쿄=홍찬선기자 hcs@donga.com

▼마이너스 금리시대 실전재테크 Ⅱ부-해외편 시리즈 순서 ▼

1. 부모와 함께 하는 10대 재테크

2. 외화채권에 눈 돌리는 일본인

3. 입맛에 맞게 고르는 은퇴 후 생활설계

4. 못 믿을 국가, 노후 자금은 내가 직접

5. 나의 사전에 정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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