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紙 밥 우드워드의 부시행정부 秘話

  • 입력 2002년 11월 17일 18시 48분


1972년 워터게이트사건을 특종 보도한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국장(59)은 그 후로도 30년간 탐사보도 전문기자로 활약하고 있다. 그에게 ‘걸리면’ 중앙정보국(CIA),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국방부 등 비밀스럽게 작동하는 어떤 기관도 실체를 드러내고 만다. 특히 새로 집권한 행정부는 그에게는 좋은 ‘먹잇감’. 그는 93년 집권한 빌 클린턴 행정부의 내부를 폭로한 ‘어젠다(agenda)’를 출간한 데 이어 19일에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내막을 파헤친 ‘전쟁 중의 부시(Bush At War)’라는 책을 낸다. 이 책은 부시 대통령과의 4시간에 걸친 단독회견을 비롯해 주요인사 100여명과의 대화를 토대로 쓰여졌다. 다음은 16, 17일자 워싱턴포스트에 보도된 책 내용 요약.

▨아프간戰의 비밀…2군벌 회유하려 CIA 특파 달러의 힘으로 일찍 승리

▽아프간전쟁의 비밀〓부시 행정부도 아프간전쟁이 그렇게 일찍 끝날줄 몰랐다. 한때는 5만명의 지상군을 파병하는 방안도 검토했을 정도. 조기 승전은 아프간 군벌들의 지지를 얻은 데서 가능했다. 이를 위해 CIA의 6개팀은 100달러짜리 지폐로 7000만달러를 아프간에 뿌렸다. 10명으로 구성된 ‘딱딱한 캔디(Jawbreaker)’라는 암호명의 선발대는 지난해 9월 27일 300만달러가 든 가방을 들고 아프간에 첫 상륙했다.

▨부시가 보는 김정일…“주민 굶주리게 하고 고문…혐오할 정도로 싫어한다”

▽“김정일은 정말 싫다”〓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에 대해 “혐오할 정도로 싫어한다(loathe)”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주민을 굶주리게 하고 있으며 거대한 수용소를 세워 가족들을 해체하고 사람들을 고문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또 “사람들이 내게 그를 쓰러뜨리려면 재정적 부담이 엄청나기 때문에 너무 빨리 움직여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내게 대북 문제는) 자유를 믿고 인간의 조건에 대해 걱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핵무기프로그램에 대한 반응으로 마치 김 위원장에게 하는 것처럼 소리를 지르고 허공에 대고 손가락을 흔들었다.

▽부시 대통령의 성격〓그는 스스로를 교과서적 인간이 아니라 직관과 육감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때론 불같이 화를 내곤 한다. 그는 이제 세계평화를 이루기 위한 기회를 잡을 거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비전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선제적, 그리고 때로는 일방적 행동을 통해 세계질서를 재정립하려는 야망을 표시하면서 이라크에 대해 먼저 얘기했고 바로 다음으로 북한과 독재자 김 위원장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국제관계를 개인관계로 치환하곤 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어머니에게서 십자가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 감동한 그는 바로 “앞으로 블라디미르라고 불러도 괜찮겠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백악관의 권력암투…파월-反파월 주도권싸움 부시, 라이스에 자문 의존

▽권력의 암투〓9월 12일 유엔총회에서 부시 대통령이 연설하는 것을 지켜보던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한 대목에서 숨이 멎는 듯했다. 부시 대통령이 수정 이전의 원고를 읽고 있지 않은가. 부시 대통령은 이어 말을 더듬다가 “우리는 필요한 (대이라크) 결의안을 위해 유엔안보리와 함께 일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파월 장관은 가슴을 쓸어 내렸다. 바로 이 한 대목을 위해 그동안 권력 내부에서 벌여온 전투가 그의 승리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그는 이라크에 대해 미국 단독으로 군사공격을 벌여야 한다는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에 맞서 국제적 공조론을 주창해 왔다. 그 공조론의 핵심은 유엔 안보리에서의 대이라크 결의안 통과.

그는 단독공격론으로 기울던 8월 5일 부시 대통령과의 담판을 통해 국제공조론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럼에도 유엔 연설문안을 놓고 체니 부통령과 럼즈펠드 장관이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하는 바람에 연설 전날 밤에야 최종적으로 유엔결의를 촉구하는 내용을 삽입할 수 있었다.

파월 장관은 칼 로브 백악관 정치보좌관에게도 견제를 당했다. 로브 보좌관은 파월 장관의 중도주의 노선에는 부시 대통령을 희생시키고서라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다고 판단했다. 9·11 테러 이후 수개월 동안 파월 장관은 백악관으로부터 TV 출연금지 명령을 받았다. 그는 이때를 ‘냉장고(icebox)에 들어가 있던 시절’로 묘사했다고 그의 측근인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이 밝혔다.

하지만 군부로부터는 지지를 받아 리처드 마이어스 합참의장은 직속상관인 럼즈펠드 장관을 젖히고 파월 장관에게 직보하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 같은 암투 속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국가안보보좌관에게 의존했다. 그는 라이스 보좌관을 ‘매우 철저하고 항상 암탉처럼 나를 보살펴주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한 언론인의 편지〓부시 대통령은 전쟁에 대한 언론의 반응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9·11테러 수주일 후 폭스 뉴스채널의 로저 에일스 회장은 그에게 비밀 서신을 보냈다. “대통령께서 (테러에 대한 대응으로) 가능한 한 가장 가혹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여론의 지지가 사라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폭스 뉴스는 가장 보수적인 언론으로 꼽히고 있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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