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대선 '좌파' 룰라후보 당선

  • 입력 2002년 10월 28일 19시 51분


《브라질에서 초등학교 5학년때 자퇴한 노동자 출신의 정치인이 5개 외국어를 구사하는 사회학 교수 출신의 현역 대통령(페르난두 카르도수)에게서 정권을 물려받는다. 동시에 브라질 최고의 엘리트도 풀지 못한 숙제까지 물려받는다. 27일(현지시간) 브라질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중도좌파인 브라질 노동자당(PT)의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후보(57)가 집권 연립여당 중 하나인 브라질 사회민주당(PSDB)의 조제 세하 후보(60)에게 압승을 거둬 임기 4년의 새 대통령에 당선됐다.》

좌파 후보가 당선된 것은 남미 최대 국가인 브라질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룰라 후보는 개표작업이 99% 진행된 결과 전체 유효투표 수의 61.2%를 획득해 38.8%를 얻은 세하 후보를 브라질 대선 사상 최다득표 차인 22.4% 차로 따돌렸다. 룰라 후보는 당선 확정 후 성명을 통해 국제적인 임무를 존중하고 반(反)인플레이션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는 약속을 확인했다. 그는 “나는 시장을 존중할 것이나 브라질 국민이 하루 세끼 식사를 해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음을 시장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 1월 1일부터 집권하는 룰라 당선자에게는 세계 9번째 규모인 브라질 경제를 안정시키는 동시에 빈부격차를 해소해야 하는 난제가 주어졌다.

그는 개인의 불행과 비극을 성공적으로 극복해 왔다. 1945년 소작농의 9자녀 중 8번째로 태어난 그는 집 나간 아버지를 찾아 7세 때 상파울루로 이주했다. 아버지가 딴 살림을 차리고 있음을 알게 된 그의 가족은 최하층민으로서의 고단한 삶을 살았다. 어린 룰라는 구두를 닦는 동시에 사탕과 땅콩을 팔러 다녔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를 자퇴하고 12세 때부터 노동자의 길을 걸어왔다.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던 판형공장에서 동료의 실수로 왼쪽 새끼손가락이 절단됐으나 그나마 계속 일할 수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불경기 때는 공장에서 쫓겨나 6개월 동안이나 일거리를 찾아 시내를 배회하기도 했다.

21세 때 동료 근로자와 첫 결혼을 했으나 부인이 출산 도중 사망했다. 적절한 치료만 받았어도 목숨을 건질 수 있었으나 그에겐 돈이 없었다. 그는 이 해 공산당원이었던 형의 권유로 노조에 가입했다. 그리고 9년 뒤. 형이 군부정권에 체포돼 모진 고문을 받았던 75년 노조원 10만명의 철강노조 위원장에 당선됐다.

이후 그의 길은 마치 대통령에 이르는 계단을 차근차근 밟아온 듯한 역정이었다. 80년까지 수차례의 성공적인 파업투쟁으로 전국적인 지도자로 부상한 그는 이 해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으나 대법원에서 무죄로 방면됐고 이어 노동자당을 결성했다. 군정이 민정으로 이양된 후 처음으로 치러진 86년 총선에서 그는 최다득표로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됐다. 89년부터는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94년과 98년 각각 25%, 33%의 득표율을 기록한 끝에 마침내 4번째 도전에서 정권을 잡았다.

그의 정치성향은 중도좌파. 80년대 초반 그는 “공산당원이냐”는 질문에 “나는 선반공”이라고 답했다. 그는 노동자당의 정치노선을 “줄기는 사회주의이지만 사회민주주의와 극좌파, 해방신학, 동성애의 권리, 환경보호주의로 수많은 가지가 뻗어 있는 나무”로 비유했다.

노동자당은 98년 대선에서 아깝게 패배한 뒤 시장경제주의를 대폭 수용하는 방향으로 정강정책을 변경해 넘지 못할 것으로 여겨졌던 득표율 35%의 벽을 이번 선거에서 넘었다.

이 때문에 노동자당의 집권으로 앞으로 브라질의 거시경제 정책이 크게 바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워싱턴포스트는 28일 보도했다.

현 카르도주 대통령은 21%에 이르는 금리정책을 유지해 만성적인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는 성공했지만 빈부격차를 더욱 벌려놓았다.

룰라 당선자는 대선에서 4년간 10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금리를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27일 당선 기자회견에선 “기적을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룰라 브라질 대통령 당선자의 인생 역정▼

1945년 소작농의 9남매 중 8번째로 태어남

1952년 직업 구하러 나간 아버지를 찾아 상파울루로 이사했으나 아버지는 딴 살림, 구두닦이와 땅콩 사탕 행상

1957년 초등학교 5학년 자퇴. 나사 공장 취업. 판형공장에서 사고로 왼쪽 새끼손가락 절단

1961년 틈틈이 기술학교에서 공부, 선반공 자격증 획득

1966년 노조가입. 같은 회사 근로자와 결혼했으나 의료혜택 받지 못해 출산 도중 산모 사망

1975년 노조원 10만명의 철강노조 위원장 당선. 파업 주도하면서 전국적 인물로 부상

1980년 군부독재 정권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투옥. 풀려난 뒤 노동자당 결성

1986년 민정이양 이후 첫 선거에서 최다득표로 연방하원의원에 당선

1989년 이후 3차례 대통령선거에 도전했으나 패배

2002년 10월27일 자신의 57번째 생일에 역대 최대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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