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유전개발 美참여 금지

  • 입력 2002년 9월 10일 18시 32분


《9·11테러 이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간에 미묘한 긴장이 일고 있는 가운데 사우디 정부는 최근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석유회사들의 유전 개발 참여를 금지시키기로 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9일 보도했다. 사우디의 이 같은 조치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둘러싸고 양국간에 정치 외교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 관계마저 악화되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1년여 투자협상 결렬〓사우드 알 파이잘 사우디 외무장관은 지난주 엑슨모빌, 로얄더치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등 서방 석유회사들에 이들 회사가 추진해온 대규모 가스전 개발투자 계획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통보했다. 알 파이잘 장관은 석유회사들에 보낸 서한에서 투자계획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강경 입장을 밝혔다.

이는 사우디 석유산업의 역사적인 재개방을 의미하는 250억달러 규모의 투자계획을 놓고 서방 석유회사들이 사우디 정부와 지난 1년간 벌여온 협상이 사실상 결렬됐음을 의미한다. 사우디는 70년대 초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에 대한 미국 석유회사들의 지분을 매입한 후 석유 및 가스 생산을 독점해왔다.

서방 석유회사들은 4년 전 사우디 실권자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 왕세제와 협상을 벌여 유전 개발에 참여하기로 합의한 후 지난해부터 3개 지역에 250억달러를 들여 유전 시추와 발전소, 담수화 시설, 유화 공장 등을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투자금지 배경과 전망〓사우디의 전격적인 투자 금지 선언은 사우디가 테러 저지를 위해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미국측의 비난과 아랍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라크 공격을 추진하는 것에 대한 사우디 내 반미 감정과 관련이 있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특히 지난달 초 워싱턴의 랜드 연구소가 사우디를 ‘악의 핵’으로 규정한 보고서를 낸 이후 수백억달러 투자에 대해 손해를 보더라도 미국과의 관계를 단절하거나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우디 내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의 주장이 득세하고 있다고 한 사우디 고위관리는 밝혔다. 사우디는 또 주식 채권 부동산 등에 유입된 대미(對美) 투자금 6000억달러 중 2000억달러 이상을 회수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그동안 미국과 북해 유전의 매장량 감소와 위험한 아프리카 유전 진출 문제를 놓고 고민해온 석유회사들에 사우디 정부의 투자금지 조치는 큰 타격이 될 전망. 사우디 정부는 그 대신 저장량이 적고 질이 낮은 유전에 대한 투자를 제시했으나 서방 석유회사들은 그럴 경우 당초 기대했던 15% 수준의 투자수익률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사우디 진출계획 자체를 포기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신문은 전망했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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