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안병준/비핵화 외교전략 있나

  • 입력 2002년 3월 11일 18시 32분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최근 비상사태에는 핵무기도 사용할 수 있다는 계획을 담은 한 비밀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특히 이 계획에는 핵무기 사용가능 지역에 북한이 포함되어 있어 우리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미 국방부가 의회에 보고한 ‘핵 태세 검토’는 핵무기 사용을 핵전쟁을 억지하려는 최후수단으로 여겨왔던 종래의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미국은 이 보고서에서 북한 중국 러시아 이라크 이란 리비아 시리아 등 7개국과 관련해 가장 우려되는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한 비상사태의 대표적인 예로써 이 문건은 이라크의 이스라엘 공격, 북한의 남한 공격, 그리고 대만해협에서의 군사대결을 들고 있다. 특히 북한과 이라크는 미 군부의 고질적인 걱정거리라는 것이다. 이들 국가는 모두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한 국가이기 때문에 이러한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에 핵무기까지 사용하겠다는 것은 핵확산금지조약에 조인한 국가들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던 종전의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미 핵전략 강공으로 수정▼

이 때문에 이 문건은 적지 않은 혼란을 자아내고 있다. 우선 냉전이 종식된 뒤 구소련의 위협이 소멸했으므로 미국이 러시아와 협상해 현재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6000기의 핵탄두를 1700∼2000기로 감축하겠다고 한 약속과 상치된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에 미국이 새로운 핵탄두를 개발하겠다고 한 것은 오히려 핵무기의 증가를 초래해 군비통제 협상을 어렵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화생방무기 등 대량파괴무기를 방지하기 위해 더욱 효과적인 신무기를 개발하겠다는 것은 핵전쟁의 문턱을 낮추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한 미 국방부의 반론은 러시아의 핵 위협은 현저하게 줄었지만 테러와 대량파괴무기의 위협은 더욱 증대되고 있으므로 미국은 이에 대처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세계평화와 안정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모든 비상계획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 국방부는 ‘즉각적인 것, 잠재적인 것, 예측 불가능한 것’ 등을 구분해 각각의 경우에 대해 충분한 억지력을 갖출 것을 계획하고 있다. 예컨대, 이 보고서는 대량파괴무기를 은닉하고 있는 지하시설을 파괴할 수 있는 소형핵무기를 연구 개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미국은 결국 이라크, 이란, 북한, 시리아 및 리비아에 의한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미국의 새로운 핵 전략으로 인해 한반도의 비핵화문제가 또다시 우리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대두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생존과 안정에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미국의 새로운 핵전략 운용이 한반도의 안정을 해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한미 간에 확고한 사전협의와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한국과 미국은 동맹국으로서 이 땅에서 전쟁을 억지하고 핵무기의 확산을 방지하는 공동목표를 추구하고 있으므로 한미 간의 전략적 조정은 실현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미국이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핵확산금지계획에 북한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북한은 1994년 미국과 체결한 제네바합의에 따라 내년에 한국이 건설에 착수할 경수로의 핵심 부품이 인도되기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을 수용해야 한다. 미국은 이 사찰의 조기 실시를 요구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찰을 완수하려면 2∼3년이 소요되므로 북한 당국이 진정으로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있다면 그 사찰을 일찌감치 받아서 비핵화에 대한 공약을 증명해야 한다고 부시 행정부는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북한이 이에 계속 불응한다면 미국은 중유 제공을 약속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협정도 재고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북-미관계는 다시 긴장상태에 들어갈 것이 뻔하다.

▼미-중-러-북과 핵외교를▼

이러한 위기를 피하고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려면 보다 전략적인 외교가 요망된다. 이상적인 것은 1992년 남북한이 이미 발효시켰던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을 이행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 응해 제네바합의의 약속을 조속히 이행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이를 위해 대북 관계뿐만 아니라 대중국 및 대러시아 관계에서도 조용한 외교를 체계적으로 전개해 나가야 한다. 아울러 국내에서는 ‘핵무기 없는 한반도’를 위해 거국적으로 결속해야 할 것이다.

안병준 전 연세대 교수·학술원 회원·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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