外相-야당 갈등… 내각불신임 확대 차단

  • 입력 2002년 1월 30일 18시 03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29일밤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외상과 노가미 요시지(野上義二) 외무성 사무차관을 동시에 전격 경질했다. 후임 외상에는 오가타 사다코(緖方貞子) 전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이 유력시되고 있다.

한밤의 경질극은 두 사람이 21, 22일 도쿄(東京)에서 열린 아프가니스탄 재건국제회의에 일본의 특정 비정부기구(NGO)의 참가를 금지시킨 진상을 놓고 한치의 양보 없이 대립한 데서 비롯됐다. 다나카 전 외상은 28일 국회에서 “NGO의 참가를 금지시킨 것은 스즈키 무네오(鈴木宗男) 의원의 입김 때문이며 이는 노가미 차관도 인정했다”고 발언했다. 스즈키 의원은 다나카 전 외상과는 앙숙지간. 그러나 노가미 차관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야당은 정부 측에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29일 국회 본회의에 불참함으로써 이 문제는 일본 정계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했다. 야당은 30일 등원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읍참마속’〓다나카 전 외상은 고이즈미 총리 탄생의 1등 공신이자 ‘간판 각료’로 입각했다. ‘개혁의 상징’인 다나카 외상을 경질한 것은 고이즈미 정권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도박’이라고 평가했다. 70%대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고이즈미 내각의 지지도가 어떻게 바뀔지가 관심거리다.

고이즈미 총리가 다나카 외상을 어쩔 수 없이 중도퇴진시킨 것은 야당이 계속해서 등원을 거부할 경우 발등의 불인 예산안처리에 차질이 생겨 내각전체가 불신을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관료와의 계속된 대립으로 외교가 공전하고 있는 데 대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불만도 작용했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는 30일 새벽 기자회견에서 “외상 경질은 정권운영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솔직히 인정했다. 이어 “다나카 외상은 다대한 공헌을 했다. 혼란의 책임은 나에게 있다”며 경질 파장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외상과 관료의 끊임없는 대립〓다나카 전 외상은 지난해 4월 취임 이후 ‘외무성 개혁’을 자신의 첫 번째 임무로 꼽았다. 그러나 9개월간 재임하면서 비밀누설, 인사동결 및 결재거부, 외빈과의 약속 취소 및 지각, 정부입장과 다른 발언, 공개적인 관료비난 등 각종 돌출행동으로 끊임없는 구설수와 자질론에 시달렸다.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외무성 관료들은 외상발언 외부에 흘리기, 총리에게 직접 보고하기, 외상 발언 뒤집기, 주요정보 감추기 등을 통해 철저하게 다나카 외상을 ‘왕따’시켰다. 국민은 외무성 관료들의 체질을 비판하면서도 관료들을 장악하지 못한 다나카 전 외상에게 실망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경질에 대한 찬반 비등〓자민, 공명, 보수당 등 연립여당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분위기.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는 “나는 처음부터 다나카 의원의 외상 기용을 반대했다”고 말했다. 야당은 대체로 다나카 외상을 두둔하면서 “경질은 했지만 누가 거짓말을 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내심 다나카 외상이 빨리 물러나길 희망해온 외무성 관료들은 “광명이 비쳤다”며 안도하고 있다.

도쿄〓심규선특파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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