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국 리더십 집중분석/영국]'제3의 길'로 개혁-성장 견인

  • 입력 2001년 8월 21일 18시 43분


'제3의 길'이란 새로운 개념으로 영국사회의변화를 이끌고 있는 토니 블레어 총리
'제3의 길'이란 새로운 개념으로 영국사회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토니 블레어 총리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요즘 영국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는 정치인 중 하나다. 야당인 보수당에서는 블레어 총리의 트레이드마크인 ‘제3의 길’이 뭐가 뭔지 모르겠다며 “토니 블러(blur·불투명하다)”라고 비아냥댄다. 소속당인 노동당으로부터도 “변절했다”는 비난과 함께 “토리(보수당의 애칭) 블레어”란 악평을 듣고 있다.

그는 지난달 16일 자신의 노선에 반발하는 노동당 소속 하원 상임위원장 2명을 교체하는 안을 하원에 제출했으나 당 소속 의원들이 대거 반대표를 던져 1997년 집권 이후 하원 투표에서 처음 패배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공공서비스 민영화 정책도 노조원 70만명이 소속된 일반공공노조(GMB) 등 노동당 지지기반인 각종 산별 노조들로부터 상당한 반발을 사고 있다. GMB는 노동당에 제공해오던 정치자금을 대폭 삭감하는 한편 대대적인 광고를 통해 블레어 총리와 일전을 벌일 태세다. 존 에드먼드 GMB 의장은 블레어 정책을 “정신나간 짓(Crazy Stuff)”이라고 표현할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레어 총리는 “공공 서비스 개혁은 중도좌파 정부로서는 파격적인 정책이지만 노선에 얽매이다간 아무 일도 못한다”며 계속 밀고 나갈 태세다.

재미있는 일은 전통적인 좌우파 개념에 연연하지 않는 블레어 총리의 정책을 “백화점식 잡동사니 정책”이라고 혹평해온 보수당 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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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당수 선거를 앞두고 보수당의 정강이나 다름없는 ‘유로화 가입 반대’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 유로화 가입 반대 철회를 주장하는 케네스 클라크 전 재무장관은 지난달 실시된 2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클라크 전 장관이 보수당 당수가 되면 보수당도 ‘제3의 길’로 들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보수당의 이런 변화는 이념보다는 실질을 중시하는 블레어 총리의 통치스타일이 국민에게 먹히고 있음을 입증 하는 것이다. 주영 한국 대사관 관계자는 “전통적인 좌우파 구도에서 벗어난 블레어의 ‘제3의 길’이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서 영국에서는 이념 혼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보수 진보 양당 체제의 전형’으로 불리던 영국에서의 이런 변화는 노동당이 6월 총선에서 압승한 이후 더욱 심해지고 있다.

노동당 승리의 직접적인 배경은 경제가 좋았기 때문. 올 들어 세계경제 둔화와 파운드화 강세 등으로 영국 경제가 다시 하향 곡선을 그리고는 있지만 영국인들은 블레어 총리 집권 1기 동안 낮은 실업률과 낮은 인플레, 높은 성장률과 재정 흑자의 달콤한 열매를 맛보았다.

블레어 총리는 집권 1기 동안 복지비용을 늘리기 위해 세금을 많이 걷어 국가경제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전통적인 노동당식 국가운영에서 탈피했다. 또 과거 노동당 정부 시절 “다우닝 10번가(총리 관저)의 실제 주인은 노조총연맹(TUC) 의장”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노조에도 ‘홀로 서기’를 선언했다.

최동진(崔東鎭) 전 주영대사는 “100년간 노조의 아성이었던 노동당에서 노조의 영향력을 벗어나는 것은 웬만한 신념과 용기로는 엄두도 내기 어려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블레어 총리는 집권 2기에도 공기업 민영화는 물론 보수당의 정책인 정부조직 축소와 규제 철폐, 시장의 자유 기능 확대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려 한다. 이 때문에 당내와 노동당 지지세력들 사이에서 “블레어 총리는 마거릿 대처 전 총리(보수당)의 가장 충실한 후계자”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당의 이데올로기보다는 국민과 국익을 앞세우는 블레어 총리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하는 데 인색한 전문가는 별로 없다. 블레어 총리는 “민주적 사회주의와 자유주의를 통합하는 중도좌파적 이념은 진화중”이라며 “나의 정치 실험이 결실을 보기 위해선 10년이 필요하다”고 공언하고 있다.

<파리〓박제균특파원>phark@donga.com

▼험프리 주한 英대사▼

“집권 2기를 맞은 토니 블레어 총리의 최대 과제는 그동안 추진해온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얼마나 실제 사회개혁으로 연결시키는가 하는 것이다.”

찰스 험프리 주한 영국대사는 블레어 총리의 리더십과 ‘제3의 길’에 대한 평가를 주문하자 영국 내 사회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직접적인 답변을 비켜갔다.

제3의 길은 블레어 총리가 97년 총선 때 들고 나온 슬로건으로 노동당의 사회민주주의와 보수당의 신자유주의를 접목한 개념. 즉 경제적 효율과 사회적 형평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내용이다.

-사회개혁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회개혁의 핵심은 바로 공공서비스 분야의 개혁이다. 블레어 총리는 줄곧 이 분야의 개혁을 강조해 왔다. 무엇보다 무상의료제도인 국립보건원(NHS)제도와 교육제도의 개혁이 시급하다. NHS제도를 개혁하려면 많은 비용이 들지만 환자들은 더 많은 혜택을 받게 될 것이다. 교육개혁은 학생들에게 더 다양하고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노동당의 지지기반인 노조의 반발을 사면서까지 공공서비스 분야를 개혁하려는 이유는 뭔가.

“블레어 총리가 취임 연설에서 밝혔듯이 국가경영을 효율화하고 21세기에 국민이 요구하는 높은 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이 분야의 개혁이 필수적이다. 이는 대다수 영국 국민이 바라는 것이다. 영국 국민은 가능한 신속하고 근본적인 개혁이 추진되길 원하고 있고 고통을 감수할 준비가 돼 있다.” -집권 2기의 블레어 내각이 앞으로 중점을 둘 정책은….“영국 정부는 전통적으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내각 출범 후 의회에서 하는 첫 연설에 기초해 우선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여왕은 6월20일 연설에서 영국사회가 발전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경제적인 안정과 투자 확대, 공공서비스 분야의 개혁 등 3대 과제를 제시했다.”

<백경학기자>stern10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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