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총선 르포]마닐라 투표중 폭력우려 삼엄한 경비

  • 입력 2001년 5월 13일 19시 09분


총선거를 하루 앞둔 13일 필리핀 수도 마닐라는 폭풍 전야처럼 고요했다.

이날 0시를 기해 선거운동이 끝나자 대부분이 가톨릭신자인 후보와 시민은 일요일을 맞아 성당을 찾았다. 거리를 뒤덮은 선거포스터 만이 유혈 폭력사태로 최소 55명이 숨진 뜨거운 선거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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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의원 선거운동중 被殺

12일 오후 6시 마닐라 시내 울트라 농구경기장에서 열린 여당 시민혁명연합(PPC)의 마지막 선거유세장은 수만명의 지지자가 참석해 마치 선거 승리를 미리 축하하는 듯한 분위기를 보였다.

이날 유세에는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과 코라손 아키노, 피델 라모스 전 대통령 등이 참석했으며 인기 여배우 도니타 로즈 등 연예인까지 대거 동원돼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아로요 대통령은 "안정과 경제 발전을 위해 여당을 적극 밀어달라" 고 당부했다.

조지프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이 이끄는 야당인 대중혁명당(PMP)은 11일 밤 승리를 자신하며 공식 유세를 마쳤다.

폭력사태가 기승을 부리면서 검문 검색이 크게 강화돼 마닐라 등 주요 도시의 호텔과 백화점 등 대형 건물에는 폭발물 탐지봉을 든 경비원이 배치됐다.

필리핀 선거 개황

인 구 7934만명(유권자 약 3650여만명)
상 원 24석중 13석 선출
하 원 262석 모두(지역구 209, 직능대표 최대 53명) 선출
주지사 시장 및 지방의회 의원 1만7600여명 선출

이번 선거는 상원 24석 가운데 13석, 하원 262석 전부(지역구 209석, 직능대표 53석), 주지사와 시장 등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 1만7000여명을 동시에 선출한다.

따라서 이번 선거는 올 1월 '시민봉기' 로 집권한 아로요 대통령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이 짙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부패 혐의로 체포돼 현재 육군병원에 연금된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은 이번 선거를 명예회복을 위한 기회로 삼고 있다.

대통령 탄핵소추권을 가진 상원의원 선거 결과는 특히 향후 필리핀의 정국 향방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여당이 상원을 장악하려면 13석 중 적어도 8석을 차지해야 한다.

마부하이 아콘조 국립 필리핀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상원을 여당이 확실히 장악하지 못하면 정통성이 약한 아로요 대통령은 궁지에 몰리고 에스트라다가 다시 영향력을 되찾게 될 가능성이 크다" 고 전망했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상원의 경우 여당은 8석, 야당은 5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이 부패 혐의로 체포된데 불만을 품은 빈민층이 1일 폭동을 일으키기 전인 4월 중순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와 같아 빈민층 폭동이 아직까진 이번 선거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빈민층이 유혈 폭동을 계기로 선거에 적극 참여할 것으로 보여 선거 결과가 반드시 여당에 유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아로요 대통령이 최근 자신과 남편 소유의 토지 1000㏊를 가난한 사람을 위해 내놓은 것도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소외돼온 빈민층의 분노를 의식해서다.

그간 엘리트 정치인을 지지하며 정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 온 가톨릭교회도 11일 "과거 빈민층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한다" 며 분노한 민심을 달래고 있다.

결국 여당이 예상대로 선거에서 승리하더라도 앞으로 빈민층 민심을 잘 다독거리지 못하면 앞으로도 정국 혼란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마닐라〓홍성철특파원>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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