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르포]바그다드는 '굶주림의 도시'

  • 입력 2001년 3월 21일 18시 35분


《91년 2월 28일 걸프전이 끝난 뒤 유엔은 이라크에 혹독한 경제제재 조치를 내렸다. 만 10여년이 지난 현재 이라크는 어떤 모습일까. 본지 신치영기자가 1주일간 이라크 현지를 방문,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제재와 사담 후세인 정권의 폭정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이라크인들의 참상을 집중 취재했다.》

이라크 영공이 봉쇄된 까닭에 비행기를 타고 이라크에 입국할 수는 없다. 할 수 없이 요르단 암만에서 빌린 지프를 타고 국경을 넘어 11시간 만에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 도착했다.

세계 제2위의 석유매장량,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끼고 있어 ‘중동의 오아시스’로 불리던 이라크. 그러나 경제제재 조치 10년을 겪은 수도 바그다드 거리는 20년이 넘은 고물 자동차와 구걸 나온 헐벗은 아이들로 넘쳤다. 한때 ‘중동의 베니스’로 불렸던 미항 바스라는 공습으로 부서진 건물과 끊긴 다리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석유 외에 모두 수입하다시피 했던 이라크에 유엔의 무역금지 조치는 생명줄을 끊은 것과 다름없었다. 의약품과 식량부족은 치명적이었다. 인도주의 차원에서 유엔은 96년 12월 식량과 의약품 구입을 위한 제한된 석유수출은 허용했으나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지금도 수많은 어린이가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다. 5세 이하 영유아사망률은 1000명당 131명으로 10년 전 56명의 배가 넘는다. 바그다드에서 가장 큰 아동병원인 사담아동병원은 의료설비가 없어 중환자실도 닫은 상태였다. 소아과 전공의 사미 가산은 “현재 입원 환자를 수용할 능력은 400명인데 매일 100여명이 입원하려 찾고 있다”며 “약품과 시설이 모자라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고 괴로워했다.

물가는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았다. 10년 전 1디나르는 미화 3달러. 현재 1달러는 1700디나르. 화폐가치가 5100분의 1로 떨어진 것이다. 경제제재 전 300달러였던 100디나르 지폐 한 장으로는 계란 1개밖에 사지 못한다.

아직도 수시로 이어지는 미국기와 영국기의 폭격과 반정부세력의 짓으로 보이는 폭탄테러 사건으로 사회는 뒤숭숭하다. 16일 새벽에도 바그다드 한복판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폭탄이 터져 2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쳤다.

이라크는 사회주의 경제체제이나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있다. 궁핍을 견디다 못한 이라크인들은 돈이 되는 것은 아무거나 내다 팔고 있다. 이슬람 휴일인 금요일 바그다드 시내 곳곳에는 옷 신발 선풍기 TV 전화기 가구 등을 팔러 나온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성한 전화기가 없는 듯했다.

무역부 관리인 하리스 이브라힘(55)은 “지난달 고교 3년생인 딸의 책상을 팔았다”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25년 공직에 몸담아온 그의 월급은 고작 1만1000디나르(약 6.5달러, 약 8500원). 이 월급과 매월 한번 정부가 배급하는 쌀 밀가루 분유 등 생필품으로는 다섯 식구가 먹고 살 수 없는 형편이다. 이나마 96년말 일부 제재조치가 완화되면서 좋아진 것이란 말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예전에는 월급으로 빵 몇 조각을 사면 끝이었다고 한다. 설비가 낡고 공급도 달려 전기와 수도는 하루에 서너시간씩 끊기곤 한다. 하지만 이를 불평한다는 것은 ‘사치’다.

걸프전이 끝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경제제재와 공습으로 이라크 국민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중순 미군기 등의 공습으로 민간인 사상자가 생기자 격분한 바그다드 시민들이 반미 시위를 벌이고 있다.[자료사진]

가정과 사회도 무너지고 있다. 성인 남자들은 40만디나르의 여권발급비를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마련한 다음 돈을 벌기 위해 홀로 인근 중동국가나 유럽 등지로 떠나고 있다. 부녀자들은 날품팔이를, 아이들은 학교 대신 거리로 나가 구걸을 한다. 의사 교수 엔지니어 등 전문인력이 해외로 떠나 사회기능은 마비되어 가고 있다.

경제제재조치 전 50%를 차지했던 중산층은 10% 정도로 줄고 나머지는 극빈층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상위 10% 정도의 상류층과 권력층은 호화저택에서 살고 있어 빈부격차가 엄청나게 커졌다. 이들은 유엔감시단의 눈을 피해 요르단 시리아 아랍에미리트 등 인근국가에서 들여온 고급승용차와 고가상품으로 배고픔을 모른다.

정부와 권력층에 대해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이라크 정부가 ‘세계 최고’라고 자랑하는 정보 조직의 감시 때문이다. 곳곳에 심어놓은 정보원 때문에 가족간에도 후세인대통령을 비판하지 못할 정도가 됐다. 얼마 전 바드다드대학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 관계자가 전한 내용은 끔찍했다.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 후세인 대통령을 비판했던 학생은 얼마 후 목이 잘린 채 발견됐으며 정보원들은 학생의 목을 자동차 뒷범퍼에 매달고 대학 교정을 두바퀴나 돌며 본보기를 보였다는 것이다. 지난달에는 철도청장이 인터넷상에서 이스라엘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들켜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바그다드 시내를 걷다 보면 5분마다 마주치는 후세인 대통령의 대형 초상화와 사진, 동상 등은 폭정이 얼마나 가혹한지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미국에 대해 경제제재로 국민만 괴롭히지 말고 어떻게든 후세인 정권을 몰아내 줬으면 좋겠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인근 중동국가와 러시아 프랑스 중국 등은 경제제재 조치를 해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27일 요르단 암만에서 10여년 만에 열리는 아랍정상회의에서도 경제제재 조치를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미국의 태도가 강경해 경제제재는 언제 풀릴지 모르는 상태다.

▼드부아 UNP대표 "경제제재로 생활 피혜"▼

“경제제재 조치로 전기 수도 교육 의료시설 등 생활 기반이 모두 파괴됐습니다. 더 나빠지지 않기만 바랄 뿐입니다.”

유엔개발계획(UNDP) 이라크 대표부의 프란시스 드부아 대표는 96년 말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석유―식량 교환프로그램’이 취해졌지만 상황은 거의 달라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석유―식량 교환프로그램’은 유엔이 경제제재를 하며 전면 금지했던 이라크의 원유수출을 완화해 식량 의약품 등을 사기 위한 목적의 수출은 허용한 것. 석유수출 대금은 유엔관리계좌로 입금되며 유엔은 이라크 정부가 6개월마다 제출하는 식량과 의약품 구매계획을 심사해 돈을 내준다.

드부아 대표는 “석유수출이 전쟁 전의 수준으로 거의 회복됐다”면서 “유엔 계좌에 들어있는 이라크의 외화보유액은 110억달러이나 인출 절차가 복잡해 실제 인출액은 3분의 1 수준”이라고 밝혔다.

UNDP 이라크 대표부는 현재 발전과 급수시설 복구, 거주지 재개발, 의료환경 개선 등 10여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드부아 대표는 “전기의 경우 전체 수요의 절반밖에 공급하지 못해 정전이 잦다”며 “이 때문에 북부지역에 있는 두 개의 수력발전용 댐을 보수하는 5억7000만달러짜리 공사를 직접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경제제재 전 식량의 75%를 수입에 의존했던 만큼 무역금지 조치로 극심한 식량난에 빠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식량농업기구(FAO)와 함께 씨앗 공급 등의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UNDP는 이밖에 세계보건기구(WHO)와 공동으로 이라크의 의료기관 설립을 지원하고 있으며 여성과 장애인 지위향상에도 힘쓰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시청각교재 논문 참고서 등 교육부자재가 부족한 학생들을 위해 인터넷 센터와 시청각교육실, 자료실 등을 갖춘 학습자료센터를 바그다드에 설립, 운영하고 있다.

<바그다드·바스라〓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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