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펀도 정치적 인물로 바뀌나

  • 입력 2001년 1월 27일 18시 30분


‘정치논리를 배격해 온 경제대통령 그린스펀마저 소신을 꺾는 것인가.’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25일 상원 예산위원회 증언을 통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감세안을 용인하는 쪽으로 자신의 의견을 ‘180도 뒤집자’ 워싱턴 안팎에서 이 같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실 그린스펀 의장은 고집스러울 정도로 경제상황에 대한 신념을 꺾지 않기로 유명한 인물. 10년 동안 계속된 미 역사상 최장기 호황도 정치적 압력에 흔들리지 않는 그의 이런 고집과 소신 때문에 가능했다는 최고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아왔다.그런 그가 조금이라도 정치적인 상황을 고려해 어떤 판단을 내렸다면 이는 단순히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 경제계에서 비상한 관심을 가질만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정치적 변신의 전조인가〓그린스펀 의장은 매우 보수적인 인사이다. 누가 봐도 민주당 보다는 공화당 성향에 가까운 인물. 워싱턴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도 68년 친구로부터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리처드 닉슨 전대통령을 소개받았을 때였고 87년6월 자신을 처음 FRB의장으로 임명한 대통령도 공화당 소속의 로널드 레이건 전대통령이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당선 확정후 처음 워싱턴에 갔을 때 가장 먼저 그린스펀 의장을 찾아갔을 정도로 그를 깍듯이 예우했다.

그린스펀 의장도 부시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텍사스 오스틴에서 경제포럼을 주최하던 3일 연방기금 금리 0.5%포인트 인하라는 뜻밖의 선물을 안겨주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 경제계는 ‘부시―그린스펀 황금시대가 오는 것 아니냐’고 반기면서도 그린스펀이 부시의 감세 공약까지 지지하리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않았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는 27일 ‘그린스펀이 초당파적 신념을 버리는가’라는 제목의 분석기사에서 “상원 증언에서 나타난 그린스펀 의장의 미 경제현황에 대한 생각은 바뀌지 않았는데 부시 대통령의 감세안에 대한 생각만 바뀌었다”며 그가 정치적 판단에 치우쳤을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월스트리트 저널도 그린스펀 의장 증언 관련 기사에 ‘FRB의장, 대규모 감세를 지지하는 정치적 움직임 보이다’라는 제목을 달기도 했다.

▽정치적 논쟁 가열〓그린스펀 의장이 감세안 지지를 선언하자 민주당이 당장 반기를 드는 등 감세안을 둘러싼 논쟁이 미 정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물론 공화당은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있는 반면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그린스펀이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고 있다.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그린스펀의 이번 발언은 누구도 도전할 수 없었던 그의 위상에 흠집을 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그가 더 이상 의회로부터 무조건적인 존경을 받기는 힘들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일부 분석가들은 그린스펀 의장이 이처럼 정치적 논쟁을 가열시킨 장본인인 만큼 앞으로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월가 등에서는 앞으로 그가 거리를 둬온 정치권과 더 큰 인연을 맺어야 할지 모른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신치영기자>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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