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서 피어난 사랑…러병사-체첸여인 결혼

  • 입력 2001년 1월 8일 18시 25분


‘전쟁터 체첸에서 피어난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

1년 넘게 끌고 있는 체첸전의 한가운데서 러시아군 병사와 체첸 처녀가 목숨을 건 사랑을 꽃 피워내 잔잔한 감동의 물결을 자아내고 있다. 러시아 민영 NTV는 7일 “지난해 12월 영국 선데이타임스지를 통해 이 사연을 전해들은 한 영국 여인이 사랑의 주인공인 세르게이 곤차로프(25)와 인디라 두두르카예바(19)가 유럽으로 온다면 파리에 있는 자신의 집을 주기로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1월 체첸 주둔 러시아군 소속의 곤차로프씨는 순찰중에 시장에서 우연히 만난 두두르카예바씨를 보고 첫 눈에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은 3주 동안 주변의 눈을 피해 ‘몰래한 사랑’을 무럭무럭 키워 나갔다.

그러나 체첸인들은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러시아군과 싸우는 상황. 두두르카예바씨의 친지들이 그가 철천지원수나 다름없는 러시아의 젊은 병사와 사랑에 빠진 사실을 알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더욱이 이슬람교도인 체첸인들은 이교도와의 결혼을 아예 금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두두르카예바씨는 사랑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혈육의 인연을 저버리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는 언니에게만 가슴아픈 사연을 털어놓은 뒤 사랑하는 임을 따라 고향땅 체첸을 떠났다.

두 사람은 6개월 후 우여곡절 끝에 결혼해 러시아 남부 크라스노다르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러나 체첸인들의 보복이 두려워 두 사람은 꽁꽁 숨어 지내고 있는 신세. 남편 곤차로프씨도 이 사건으로 러시아군에서 쫓겨난 상태여서 생계마저 어렵게 꾸려나가고 있다.

이들을 돕겠다고 나선 영국여인은 이란 출신으로 13세 때 나이많은 부자와 결혼하라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고 영국으로 유학간 뒤 지금까지 부모와 화해를 하지 못했다. 이런 사연 때문에 그는 가족과 헤어진 두두르카예바씨의 처지를 공감하게 돼 이들을 돕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곤차로프 부부가 이 영국여인의 호의를 받아들여 유럽행을 결심할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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