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철교수의 쿠바기행]관광객이 '빛바랜 혁명' 살린다

  • 입력 2000년 11월 20일 19시 19분


쿠바공항에서 수도인 아바나 시내로 들어가면서 거리에 개와 고양이가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경제위기 이후 식량난으로 개와 고양이가 자취를 감췄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사방에 개와 고양이가 보였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쿠바는 기본적인 욕구를 중시하는 사회주의 정책 덕분에 유엔개발계획(UNDP)의 평가에 따르면 평균적인 삶의 질에서 중남미에서는 최상위에 속하는 나라였다. 특히 교육과 의료서비스는 최고를 자랑했다. 그러나 소련과 동구가 몰락한 뒤 쿠바는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소련이 쿠바의 설탕을 비싸게 사주고 싼 값에 석유를 팔아줌으로서 제공하던 연 20억 달러의 지원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식량과 연료를 수입에 의존하는 쿠바는 엄청난 위기에 봉착했다. 특히 미국은 이번 기회에 카스트로 정권을 몰락시키겠다며 경제제재를 더욱 강화해 쿠바와 거래하는 기업은 미국과 거래할 수 없도록 법을 제정함으로서 쿠바를 더욱 고립시켰다. 이에 쿠바는 중국에서 자전거 20만대를 들여오고 아바나의 명물인 350인승 초대형 버스, 즉 장거리용 대형트럭에 기차 객차 비슷한 것을 매단 버스를 개발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했다.

‘돌아온 애완동물’이 보여주듯이 쿠바는 이제 북한과 마찬가지로 최저점을 지나 회복세에 있다. 그것은 다양한 자구노력도 노력이지만 카스트로가 ‘비상시기’를 선언하고 과감한 경제개혁을 단행한데서 연유한다. 즉 제한적이지만 사영기업을 허용하고 외국투자를 유치하는 한편 관광을 대폭 개방했기 때문이다. 달러를 직접 통화로 사용하는 ‘경제의 달러화’까지 허용했다. “쿠바혁명의 성과인 주권과 자주, 교육과 의료제도 이외에는 모든 것을 협상할 수 있다”는 것이 카스트로의 입장이다. 특히 관광부문은 엄청나게 성장해 올해에만도 200만명의 관광객이 쿠바를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경제제재는 미국 이외에는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해 외자유치가 늘고 있다.

쿠바에 도착해 놀란 것은 여행하는데 전혀 환전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모든 거래가 달러로 가능했기 때문이다. 택시의 경우 아예 미터기 자체가 달러로 표시됐다. 경제의 달러화 덕분이다. 유럽과 캐나다 관광객이 다수이고 정작 미국 관광객은 경제제재 때문에 거의 없는데도 관광용 통화가 달러라는 사실이, 그리고 반미의 기수인 쿠바가 다른 나라들도 별로 하지 않는 달러의 공식 통화화를 채택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역설적이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호텔 등에서 모든 신용카드를 받지만 미국에서 발행된 카드는 받지 않는다는 것. 경제제재로 결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카드만 안받는 나라, 무척 재미있는 나라이다.

사영 부문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고용인수를 기준으로 경제의 약 7% 정도 된다는 것이 아바나대학 출신 관광안내원의 설명이었다. 북한에서 텃밭이라고 부르는 짜투리 자영농장에서부터 아바나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노상서점들, 공예 및 민속품 노점, 거리의 화가에서 레스토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영업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그러나 이 부문이 지나치게 비대해지지 않도록 국가의 통제가 계속되고 있다. 자영 레스토랑의 경우 테이블 3개에 의자 12개 이하로 통제하고 있으며 매상의 50% 이상을 세금으로 징수하는 중과세로 이들의 팽창을 견제하고 있다고 한다.

주목할 것은 쿠바에도 한국제품의 진출이 눈부시다는 점이다. 낡은 일반택시가 아닌 호텔주변의 고급관광 택시들은 상당수가 그랜저, 엘란트라 등 한국차다. 한 택시 운전사는 “자동차를 보면 쿠바의 역사를 알 수 있는데 아직도 아바나 시내를 누비는 낡은 50년대형의 미국 자동차가 상당수 있고 혁명 이후에는 소련제 자동차가 늘었다가 최근에는 한국차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해변휴양지인 바라데로로 가는 시외도로에는 다른 곳에는 없는 대형 광고판이 10개 정도 서있는데 그 중에는 LG의 광고판도 있다. 한 택시 운전사는 삼성의 CD플레이어를 샀는데 10년을 써도 고장 한번 안나고 성능이 좋아 오랫동안 저금한 돈으로 삼성 컬러TV를 최근 구입했다며 한국 전자제품 선전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최근의 경제개혁이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달러부문과 일반부문 사이의 격차와 갈등이다. 물론 멕시코를 포함해 제3세계를 여행할 때 부딪치는 걸인들을 쿠바에서는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일반인의 경우 한달 월급이 10달러에서 최고 25달러인 것이 쿠바의 현실이다. 한 살사댄스클럽에서 만난 영어교사는 자신의 월급이 10달러이며 의사의 월급도 15달러 수준이라고 밝혔다. 앞의 택시 운전사도 한국산 20인치 컬러TV를 사기 위해 6년을 저축했다고 불평했다. 쿠바 특유의 낙천적 분위기로 인해 사람들의 얼굴은 상대적으로 밝았지만 좁은 아바나의 골목을 며칠 동안 걸으면서 부딪친 많은 사람들, 그리고 창을 통해 들여다 본 집안풍경 등 일반인들의 삶에는 가난이 배어 있었다.

반면에 관광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하다 못해 호텔 청소부도 팁으로 상당한 달러를 벌고 있다. 그리고 달러를 사용하는 상점에는 없는 물건이 거의 없을 정도였지만 일반인이 이용하는 가게에는 선반이 거의 비어 있었다. 이런 격차는 쿠바 사회를 균열시키고 있으며 쿠바 최고의 명문대인 아바나대 졸업생들이 관광안내원, 심지어 호텔 청소부로 몰리는 기현상을 낳고 있다. 방에 놓은 팁에 대해 청소부가 유창한 영어로 써놓은 감사편지를 읽으며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옛 쿠바의 불명예였던 매춘 역시 급속히 되살아나고 있다. 특히 바라데로의 경우 얼마 전 카스트로의 특명으로 일제 소탕작전을 벌였는데 무려 7000명의 매춘부가 적발됐고 비호하던 경찰도 대거 구속됐다고 한다. 호텔마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사복요원들이 배치돼 매춘부들의 출입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바나의 밤거리를 달리다 보면 여전히 ‘밤거리의 꽃’들이 서성대고 있었다.

결국 쿠바는 경제회복을 위해 관광산업을 더욱 발전시키고 외자유치를 가속화할 수밖에 없지만 그럴수록 달러부문과 일반부문의 격차는 벌어지고 개방에 따른 부작용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재 쿠바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딜레머이다.

▼ 쿠바-북한 다른 점 닮은 점 ▼

북한과 쿠바는 비슷한 점이 많다. 이들은 몇 나라 남지 않은 소위 사회주의 국가중에서 두 나라, 아니 보기에 따라 이제 남아있는 마지막 사회주의 국가들이다. 그리고 특히 작은 국가로 반외세와 자주를 강조해 왔고 공산권 몰락 후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점도 비슷하다.

게다가 두 나라를 대표하는 지도자, 즉 김일성 전 북한 주석과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30년 이상 집권해서 공산권 몰락 전에는 사회주의와 비동맹 진영에서 원로대우를 받아 왔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느낀 것은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나타나는 중요한 차이는 한 마디로 쿠바의 유연성이다.

우선 쿠바의 어디에도 카스트로의 동상을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럼주공장을 관광하면서 슬쩍 훔쳐본 공장 사무실에는 카스트로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이 사진도 초상화형의 권위주의적인 사진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사진이었고 아바나 시내에 동상이 무수하게 널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카스트로의 동상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는 살아 있을 때부터 거대한 동상 등을 세워 김 전주석을 신격화했던 북한의 개인숭배 같은 것이 쿠바에는 없음을 시사해준다.

두번째 인상적인 것은 서점에 가보니 존 스튜어트 밀 등 소위 부르조아 학자라고 할 수 있는 학자들의 고전에서부터 진보적이라고는 하지만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이탈리아 좌파학자 안토니오 네그리의 최근 저서 등 다양한 책들이 판매되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는 쿠바가 북한과 달리 사상의 자유에 있어서 훨씬 유연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선전구호와 포스터 등이 보여주는 유연성이다. 즉 주체 필체로 천편일률적으로 쓰여진 북한의 선전구호와 달리 쿠바의 포스터나 구호들은 예술적 스타일에서 다양했다.

한가지 예로 혁명박물관의 거대한 두 포스터는 독재자 바티스타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대통령을 희화적으로 그려놓고 각각 “(독재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혁명을 가능하게 해줘서 고맙다”, “(쿠바 제재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혁명을 강화시켜줘서 고맙다”고 써 넣어 이들을 매섭게 풍자하고 있다.

쿠바와 남북한 관계

쿠바-북한쿠바-한국
·1960년 8월 수교

·1991년 3월 군사협정 체결

·1993년 3월 무역경제협력협정 체결

·1999년 4월 북한군 대표단이 쿠바를 방문해 국방장관 회담 가짐.

5월 쿠바 무역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해 경제과학기술협의

의정서에 조인하는 등 양국간 연대성 강화

·외교관계 없음

·99년 현재 제3국을 통해 한국이 쿠바에 연간 5000만달러 수출. 수입 규모는 파악안됨

·주요 수출품은 자동차 가전제품 의류 문구 등

쿠바-북한간 경제력 및 군사력 비교

-쿠바북한
국내총생산(GDP·98년)173억달러125억달러
1인당 GDP(98년)1560달러571달러
실질경제성장률(97년)2.5%-6.3%
외채(97년)107.9억달러119억달러
정규군(98년)10만5000명117만명
예비역+비정규군(98년)163만5000명784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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