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사태]혼돈의 美대선…"재투표땐 헌정 치명타"

  • 입력 2000년 11월 10일 19시 29분


미국 대통령 선거가 사상 초유의 대혼란을 겪고 있다. 승부의 키를 쥔 플로리다주는 재검표 소동과 부정선거 논란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법정 다툼과 재투표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갈 경우 헌정 자체가 치명타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수일간 지구촌을 뒤흔들고 있는 ‘혼돈의 미 대선’ 상황을 종합 정리한다.

▽‘드라마’의 시작〓8일 오전(이하 한국 시간) 대선 최대의 승부처로 손꼽혀온 플로리다주(선거인단 25명)의 개표가 시작된 뒤 당초 출구 조사에서 뒤졌던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가 앨 고어 민주당 후보에 앞선 것으로 나타나면서 혼란이 시작됐다. 곧 이어 CNN방송 등 미 언론들은 ‘부시 당선’ 보도를 내보냈으며 부재자 투표를 제외한 100% 개표 결과 부시 후보가 불과 1784표 앞선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자 ‘당선 축하 전화’까지 했던 고어 후보측은 “재검표가 끝날 때까지 패배 인정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플로리다주 선관위는 “주법에 따라 재검표를 실시할 것”이라면서 “해외부재자 투표 결과는 계속 집계 중이기 때문에 개표는 계속 진행될 것”이라고 발표해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이에 따라 부시 후보는 준비했던 당선 연설을 취소했다. 이때까지 부시후보는 246명, 고어 후보는 260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한 상태였다.

▽재검표 파문〓플로리다주의 재검표는 두 후보간의 득표차가 유효표의 0.5% 미만일 경우 자동 실시된다는 주법에 따라 9일 밤부터 67개 전 선거구에서 진행됐다. 하지만 팜비치와 볼루시아 등 몇 개 선거구에서 투표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논란이 민주당 유권자들에 의해 제기돼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우선 기표 용지가 복잡하게 디자인 돼 고어 후보의 지지자들이 팻 뷰캐넌 개혁당 후보를 찍게 됐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소수 유색인종 단체는 “노스 플로리다 지역에서 경찰의 투표 방해 행위가 있었으며 선거 기록부와 일치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투표권을 박탈당한 일까지 있다”고 밝혔다.

10일 오후 현재 1개를 제외한 66개 선거구의 재검표가 비공식 완료된 결과 1차 개표에서 부시 후보에게 1784표 뒤져 있던 고어 후보는 맹추격을 거듭, 표차를 229표까지 줄였다.

그러나 재검표 파장은 살얼음판 승부를 벌인 다른 주들로 번져 가고 있다. 뉴멕시코주 역시 9일부터 재검표가 진행중이며 민주당의 태도에 격분한 공화당은 고어 후보가 신승한 아이오와, 위스콘신 주에 대해서도 재검표를 요구할 태세다.

▽‘태풍의 눈’ 부재자투표〓플로리다주의 재검표 결과가 14일 공식 발표돼도 최종 승부는 판가름나지 않는다. 해외 부재자투표 결과는 17일까지 집계되기 때문. 두 후보간의 표차가 워낙 적다 보니 부재자 투표가 대통령을 결정할 수도 있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플로리다주는 10일 “최종 집계 결과는 17일 이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최대의 관심사는 부재자 투표의 규모와 투표 성향. 플로리다주 국무부의 벤 매케이 대변인은 10일 “발송된 투표 용지수를 알 수 없다”고 밝혔다. 투표 결과 역시 쉽사리 예측하기 힘들다. 부재자 투표 대상은 해외 주둔 미군과 플로리다에 적을 둔 이스라엘내 유대인 등인데 전통적으로 군쪽은 공화당이 6대4 비율로 앞선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번엔 민주당 부통령 후보가 유대계라는 변수가 있다. 96년의 경우 3만여장이 발송돼 2300여장이 회수됐고 이중 56%가 공화당 밥 돌 후보에게 투표했다.

▽소송의 향방〓투표 부정 논란이 커지면서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소송이 봇물처럼 이어지고 있다. 10일 현재 8건의 소송이 플로리다 주법원과 연방법원에 제기된 상태. 이중 6건은 팜비치 카운티에서, 2건은 텔러해시 카운티에서 제기됐다. 그러나 팜비치에서 제기된 1건은 이미 기각됐다. 팜비치에서 나비모양의 투표용지 때문에 발생한 기표 실수와 관련된 소송에 대해서 법원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상태.

공화당은 “투표용지는 양당의 합의를 거친 것인데다 이미 언론을 통해 유권자들에게 충분히 홍보가 된 것”이라고 일축했다. 법조계도 이 부분은 소송의 대상이 되기 힘들 것으로 전망한다. 만약 한두 개의 소송이 받아들여질 경우 판결과 재투표까지 걸릴 시간은 예상조차하기 힘든 상황. 이로 인해 내달 18일 공식 대통령 선거일은 물론 내년 1월 20일의 대통령 취임까지 연기되는 게 아니냐는 견해까지 나오고 있다.

<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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