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유적조작' 정밀조사 착수…고대사 수정 불가피

  • 입력 2000년 11월 6일 19시 07분


일본 도호쿠(東北)구석기문화연구소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 부이사장이 유적발굴을 날조해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문부성이 다른 발굴유물에 대한 정밀조사에 착수하기로 하는 등 일본 역사학계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후지무라 부이사장의 유적발굴을 토대로 일본에도 이집트문명에 견줄 만한 독자적 고대문명이 존재했다며 일본민족의 유구한 역사를 역설해온 역사책은 ‘거짓’이 되고 만 것이다.

오시마 다다모리(大島理森)문부상은 6일 “후지무라 부이사장이 어디까지 관여했는지 정밀 조사를 할 것”이라며 “후지무라 부이사장이 자백한 2개 지역 유물 외에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교과서의 내용도 재점검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역사교과서의 해당 내용을 수정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일본 역사학계가 원점부터 다시 검증해야 하는 부분은 일본내 구석기시대 유물의 상한 연대. 후지무라 부이사장이 고고학계에 등장해 명성을 날리기 이전까지 가장 오래된 구석기 유물은 1946년 발굴된 2만5000년 전 것이었다.

그러나 후지무라 부이사장이 1981년 미야기(宮城)현에서 4만∼5만년 전 석기를 발견한 데 이어 93년 55만년 전, 95년 60만년 전, 99년 70만년 전 석기를 계속 발굴하자 일본내 구석기유적의 상한 연대는 엄청나게 부풀려졌다.

이번에 들통난 미야기현의 가미타카모리 엉터리 선사유적은 산세이도, 짓쿄출판, 야마가와출판 등이 펴낸 문부성 검정필 교과서에 ‘사실’로 기술되어 있다. 이 책에는 “50만∼60만년 전의 전기 구석기시대 유적이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베이징 원인(北京原人)과 같은 단계의 인류가 아시아대륙을 통해 일본에 온 것이 분명하다“고 씌어 있다. 우익단체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만든 책에도 “가미타카모리 유적 연대는 78만년 전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 유물의 주인은 자바원인이나 베이징원인류로 추정된다”며 일본 역사의 유구함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번에 유물 발굴이 조작된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이같은 내용은 모두 바뀌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도쿄〓이영이특파원>yes202@donga.com

▼'몰카'에 어떻게 잡혔나?▼

일본에서 일어난 희대의 선사유적 발굴조작 사건은 한 신문사의 추적 취재 끝에 결국 조작 현장이 ‘몰래 카메라’에 생생하게 잡히면서 종결됐다.

도호쿠(東北)구석기문화연구소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부이사장이 ‘최고(最古)유적’ 발굴을 거듭하자 일본 고고학계에서는 몇 년 전부터 조금씩 의문을 제기했다. 이는 △발굴된 석기의 상태가 너무 깨끗한 점 △1980년대 이후 중요유물을 죄다 후지무라가 발굴한 점 △지각 변동이 심한 지층임에도 석기가 대부분 같은 깊이에서 발굴된 점 △가미타카모리 유적에서 발견된 석기는 양면이 가공된 조몬(빗살무늬)토기와 비슷한 점 등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고고학계 인사를 취재한 끝에 조작에 대한 심증을 굳히고 유적발굴 현장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했다. 마이니치신문은 “고고학 연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행위의 진위를 밝히기 위해서는 발굴책임자의 동정을 확실하게 붙잡을 필요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카메라를 설치한 이유를 밝혔다.

마이니치신문은 9월 홋카이도(北海道) 유적발굴작업이 진행될 때에도 카메라를 설치했으나 화면상태가 좋지 않아 날조사실을 입증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카메라가 설치된 줄 모른 채 발굴현장에 나타나 유물을 파묻는 모습이 그대로 잡히면서 발굴 사기극은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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