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 노벨상 수상]평화상 받기까지

  • 입력 2000년 10월 13일 18시 43분


'14전 15기'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15번째 도전 끝에 이뤄낸 결실이었다. 김대통령은 86년 처음으로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이후 올해까지 빠짐없이 후보 명단에 올랐다.

86년은 민주화의 물꼬가 막 터지려 할 때였다. 미국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해 가택금상태에 있던 김대통령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한 것은 김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웠던 당시 미국의 제임스 레이니 에모리대학 총장이었다. 레이니총장은 후에 주한대사를 지내기도 했다.

김대통령은 다음해인 87년에는 당시 서독의 사민당 의원들의 추천으로 상당히 유력한 후보로 부상했다.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에게 대통령후보를 양보하고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더라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을 것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이후 김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신장한 지도자로서 해마다 국내외 인사들에 의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됐다. 김대통령을 추천한 인사들은 주로 외국인들이었다. 김대통령의 민주화경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유럽국가들, 특히 독일의 사민당 의원들과 미국의 대학교수들이 주축이었다. 김대통령의 명성이 국내에서보다는 외국에서 더욱 높기 때문이었다.

국내에서 김대통령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기 시작한 것은 95년부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기택(李基澤)한나라당 고문이 대표위원으로 있던 민주당에서 당시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이던 김대통령에 대한 추천서를 연명으로 제출했다.

그 후 남궁진(南宮鎭)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을 중심으로 한 김대통령의 측근들과 김대통령이 설립한 아태평화재단이 거의 매년 김대통령을 추천했다.

하지만 올해는 국내에서 추천한 인사는 없고 몇몇 외국인사들이 추천작업을 했다. 그 중에는 87년 중미평화협정을 주도한 오스카 아리아스 산체스 전 코스타리카 대통령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후보추천은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이뤄졌기 때문에 추천사유에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한 노력은 명기되지 않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공적만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노벨위원회의 심사과정에서는 당연히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의 이산가족 상봉과 비전향장기수 송환, 남북장관급 회담 등 일련의 긴장완화와 교류협력조치들이 주요 업적으로 평가받았다.

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는 지난해 7월4일 '제2의 노벨상' 이라고 불리우는 '필라델피아 자유메달상'을 수상한 것과 지난달 노르웨이의 라프토 인권상을 수상한 일도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김대통령이 노벨위원회 사무국장인 게이르 룬데스타드 교수와 미국 망명시절부터 잘 아는 사이인 것도 도움이 됐을 듯하다.

김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기까지는 역경도 많았다. 올해에는 한나라당의 이신범(李信範)전 의원이 주도한 수상저지운동이 물의를 일으켰다. 95년엔 김대통령의 수상을 정부 차원에서 저지하려 했다는 소문이 나돌아 논란이 일기도 했다.

<최영묵기자>ym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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