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베스트5]DNA규명-상대성이론 '최고중의 최고'

  • 입력 2000년 10월 11일 18시 51분


《노벨상이 1901년 첫 수상자를 낸 뒤 올해 100년 째를 맞았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은 수줍은 성격의 소유자였던 알프레드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 번 돈을 모두 털어 넣어 만든 노벨상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열심히 노력하는 과학자들의 궁극적 목표가 됐다. 동아사이언스는 노벨상 100년을 기념해 물리 화학 생리·의학 등 3개 분야에서 과학과 기술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수상자 5명씩을 선정해 그 업적과 현대적 의미를 짚어보았다. 동아사이언스는 각 분야마다 국내 권위자 5명에게 의뢰해 최고 업적을 낸 과학자들을 선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다만 물리 분야에서는 국내 물리·천문학자 60명으로부터 E메일을 받아 선정했다.》

▼물리학상 베스트5▼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60명의 국내 물리·천문학자들 중 49명이나 지지해 1위로 선정됐다. 2·3·4위는 양자역학 분야의 업적으로 묶을 수 있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사고방식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산업기술에 혁명을 일으킨 20세기 물리학의 양대산맥”이라고 김정욱 원장은 평가했다.

김진의 교수는 “시·공간을 하나로 묶고 절대라는 개념을 무너뜨린 새로운 패러다임인 상대성이론은 아인슈타인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자현상은 당시 많은 과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연구했기 때문에 하이젠베르크나 슈뢰딩거 등이 아니어도 시간은 걸렸겠지만 양자역학이 형성됐을 것으로 본다.

아인슈타인의 노벨상 수상 업적에는 상대성이론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사실 그는 1910년부터 1921년까지 1911년과 1915년을 제외하고 계속 노벨상 추천을 받았지만 심사위원회는 상대성이론을 실험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배제했다. 하지만 심사위원회가 수상 이유로 지적한 광전효과 법칙 또한 양자역학 혁명의 시발점이라고 할 만큼 위대한 업적이다.

플랑크는 양자가설, 즉 빛에너지는 연속적이 아니라 단위값에 정수배가 되도록 불연속적이라는 내용을 제시함으로써 양자이론을 창시했다. 고전역학으로 풀 수 없는 불연속적인 양자현상은 하이젠베르크가 행렬역학으로, 슈뢰딩거가 파동방정식을 도입해 해결함으로써 양자역학이 확립됐다. 후에 이 두 접근방법은 동일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밝혀졌다.

임경순교수는 “불확정성원리로 유명한 하이젠베르크가 당시에 노벨상을 수상한 업적은 양자현상을 행렬역학으로 풀어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5위를 차지한 반도체 연구도 양자역학의 산물이다. 당시 트랜지스터는 지금의 반도체 칩보다 엄청나게 컸기 때문에 상업화 가능성조차 의심받았지만 쇼클리 등의 연구는 반도체 혁명의 시작이라고 할 만큼 커다란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그밖에 뢴트겐의 X선 발견, 보어의 원자구조와 복사에 대한 연구, 타운스 등의 메이저·레이저 발견, 슈윙거 등의 양자 전기역학 기초원리 연구, 바딘 등의 초전도 이론 개발, 펜지아스와 윌슨의 우주배경복사 발견 등이 많은 표를 획득했다.

<이충환·박미용동아사이언스기자>cosmos@donga.com

물리학상
순위연도수상자업적
11921알버트 아인슈타인광전효과―이론물리학 기여
21932베르너 하이젠베르크양자역학의 창시 및 응용
31918막스 플랑크에너지 양자 발견
41933폴 디랙과 에르빈 슈뢰딩거양자역학에 파동방정식 도입
51956윌리엄 쇼클리 등트랜지스터 효과 발견

선정 참여 전문가
고등과학원 김정욱 원장, 서울대 김진의 교수, 서울대 윤홍식 교수, 한국과학기술원 이해웅교수, 포항공대 임경순 교수 등 60명(이름 가나다순)

▼생리의학상 베스트5▼

지난 100년 동안 노벨생리의학상 분야에서 최고의 업적으로 왓슨과 크릭, 윌킨스가 DNA의 정체를 밝힌 것이 꼽혔다. 이들은 이중나선구조를 가진 DNA가 어떻게 유전정보를 전달하는지 메커니즘을 밝혔다.

그 결과 신의 영역으로 인식되던 생명체의 기본 암호가 인간에 의해 낱낱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정진하 교수는 “인간게놈프로젝트를 비롯해 최근 생명공학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는 눈부신 성과들은 모두 DNA의 정체가 밝혀졌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설명한다.

2위는 페니실린을 발견한 플레밍, 그리고 이를 순수하게 정제한 플로리와 체인이 차지했다. 황상익 교수는 “페니실린은 특효약이라는 이름에 진정으로 걸맞는 최초의 약”이라며 “수많은 세균성 질환을 막아 인류의 생명을 구한 공로가 크다”고 의미를 밝혔다.

페니실린은 2차 세계대전 중에 대량생산돼 수많은 병사의 목숨을 구했다.

3위는 당뇨병 치료제인 인슐린을 발견한 밴팅과 매클리어드에게 돌아갔다. 고대부터 인간을 괴롭힌 당뇨병 치료에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한 일이었기에, 이들은 업적을 이룬지 2년도 채 못 돼 이례적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황상익 교수는 “인슐린의 발견으로 호르몬 분비 이상과 같은 대사성 질환의 정체를 제대로 규명하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말한다.

4위는 결핵균 등을 발견해 세균학을 창시한 코흐가 선정됐다. 그는 전염병에는 반드시 원인이 되는 세균이 존재한다는 점을 밝혀냈으며, 특정한 질병에는 각기 특정한 원인이 있다는 현대적 질병관을 확고히 정립했다.

5위로는 초기 배아 발생의 유전학적 조절 메커니즘을 규명한 루이스와 위샤우스, 뉘슬라인이 선정됐다. 이들은 배아단계의 생명체에서 어떤 유전자 무리가 몸의 각종 기관을 자라게 만드는지를 밝힘으로써 유전자 이상에 의한 선천적 기형의 원인을 규명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김훈기·김홍재동아사이언스기자>wolfkim@donga.com

생리의학상
순위연도수상자업적
11962제임스 왓슨, 프랜시스 크릭 등DNA의 분자구조와 생체에서 정보전달 역할에 관한 연구
21945알렉산더 플레밍 등페니실린 발견
31923프레데릭 밴팅 등인슐린 발견
41905로베르트 코흐각종 세균 발견, 세균학 창시
51995에드워드 루이스 등 배아의 유전자 무리 발견

선정 참여 전문가
포항공대 신희섭 교수, 연세대 의대 안용호 교수, 생명공학연구소 이대실 책임연구원, 서울대 정진하 유전공학연구소장, 서울대 의대 황상익 교수(이름 가나다순)

▼화학상 베스트5▼

‘노벨화학상 베스트 5’ 선정에 참여한 국내 권위자들은 폴링의 업적을 모두 베스트로 꼽았다. 폴링은 화학 결합의 이론을 정립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응용한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그는 양자역학을 활용해 분자의 성질을 화학결합 사이의 거리와 각도로 설명하는 데 성공했다. 주먹구구식으로 실험해왔던 화학 결합을 계산을 통해 예측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진정일 교수는 “현대화학의 초석을 마련한 폴링의 연구업적이 1위로 선정된 것에 대해 이견을 가질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폴링은 반전 반핵 평화운동에 적극 참여한 공로로 1962년 노벨평화상도 수상했으며, 비타민C의 열렬한 옹호자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2위는 우드워드의 ‘천연물의 인공적 합성’이 선정됐다. 우드워드는 자연적으로만 생성되던 천연물질을 실험실에서 합성하는데 성공한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말라리아의 특효약인 퀴닌, 생리화학물질인 비타민 B12, 콜레스테롤, 코르티손 등 복잡한 유기화합물을 합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3위로 선정된 연구는 하버의 ‘암모니아 합성’이다. 하버는 카를 보슈와 함께 식물에게 필요한 질소비료에 사용하기 위한 암모니아의 대량 생산법을 고안했다. 하버의 연구는 20세기 녹색혁명의 출발점으로 이어졌으며, 식량난을 해결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하버는 독일의 세계대전에 적극 참여했고,그의 연구가 인구폭발이나 환경문제를 일으켰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받고 있다.

4위는 마리 퀴리의 ‘방사성 동위원소 발견’이 차지했다. 방사성 동위원소인 순수 라듐을 분리해낸 이 연구는 질병 치료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핵물리학 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방사성 물질을 제공하는데 기여했다.

5위는 프레데릭 생어의 연구 ‘핵산의 염기배열 결정’이다. 그가 ATCG 등 네 개의 염기 서열을 결정하는 방법을 개발함으로써 오늘날 게놈프로젝트를 통해 생명체의 설계도를 해독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는 1958년 ‘인슐린의 구조 결정’과 1980년 ‘핵산의 염기배열 결정’으로 노벨화학상을 두 번 받았다. 이외에도 1903년 아레니우스의 ‘전기분해’, 1908년 러더퍼드의 ‘방사능 물질의 원소 붕괴 및 화학적 연구’, 1961년 캘빈의 ‘생체대사과정 화학적 규명’, 1977년 프리고기네의 ‘비평형 열역학’ 등이 추천됐다.

<박응서·장미경동아사이언스기자>gopoong@donga.com

화학상
순위연도수상자업적
11954라이너스 폴링화학결합의 원리 해석
21965로버트 우드워드천연물의 인공적인 합성
31918프리츠 하버암모니아 합성
41911마리 퀴리방사성 동위원소 발견
51980프레데릭 생어핵산의 염기서열 결정

선정 참여 전문가
서울대 김성근 교수, 고려대 김용준 명예교수, 서울대 김희준 교수, 서강대 이덕환 교수, 고려대 진정일 교수(이름 가나다순)

▼노벨상 100년 오점들▼

노벨상이 지금과 같은 권위와 영향력을 갖게 된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공정한 심사와 엄청난 상금이 그것이다. 그러나 지난 100년을 돌아보면 노벨상을 둘러싼 불미스러운 일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가장 심각한 경우는 잘못된 수상. 1926년 심사위원회는 기생충이 암의 원인이라고 밝힌 덴마크의 병리학자 요하네스 피비거의 업적을 인정해 생리의학상을 수여했다. 그러나 이 결과는 실험에 쓰였던 특정 품종의 쥐에서만 발견되는 희귀한 현상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다행히도 그때는 이미 피비거가 죽은 뒤였다.

때로는 업적이 시대를 너무 앞서가 수상이 늦어진 경우도 있다. 1926년 양자역학의 기초가 되는 파동함수의 통계적 해석을 창안한 유태계 독일인 물리학자 막스 보른이 대표적인 경우. 당시에는 아인슈타인 등 학계의 거물들이 그의 해석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28년이 지난 1954년에야 보른은 물리학상을 수상한다. 아직까지도 보른의 후손들은 스웨덴 아카데미에 반감을 갖고 있다.

수상자 선정의 공정성을 놓고 과학자간의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1933년 생리의학상은 미국의 생물학자 토머스 모건에게 돌아갔다. 그러자 그의 제자였던 허먼 멀러는 초파리 염색체의 유전자 지도를 만든 것은 자신의 업적이라며 스승을 표절자라고 비난했다. 그 후 그는 십 수년간 외국을 떠돌았지만 1946년 마침내 생리의학상을 타게 된다. 최근에는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타기 위해 노골적으로 스스로의 업적을 홍보하고 있다. 외국 강연에 인색한 과학자들도 스웨덴이라면 자비를 들여서라도 날아간다. 노벨상 심사위원이 오기라도 하면 과학자들은 최고의 접대를 하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노벨상을 받고 나면 연구를 그만두고 연구소 소장 같은 행정 책임자가 되는 경우도 매우 흔하다. 심지어 대학원 때 연구결과로 상을 받은 뒤 연구에서 손을 떼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노벨상금이 이혼 위자료로 쓰이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진다.

지금까지 최다 수상자를 낸 나라는 단연 미국. 과학분야 수상자 448명중에 미국인이 183명이다. 아시아인 수상자는 고작 11명. 이중 1930년 물리학상을 받은 인도인 찬드라세카라 라만과 4명의 일본인을 제외하고 모두 미국에서의 활동으로 상을 받았다. 전체 노벨상 수상자 703명 중 127명이 유태인인 점도 특이하다.

<강석기동아사이언스기자>alchimist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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