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새교과서 왜곡 심각…역사교과서 "20년 뒷걸음"

  • 입력 2000년 9월 13일 18시 39분


일본 역사교과서의 기술 내용이 20년 전 상태로 되돌아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문부성에 검정을 신청해 놓은 2002년도판 중학교 역사교과서는 8종. 새 교과서는 과거 일제의 침략 행위를 전적으로 부인하거나 아시아 국가에 대한 가해 사실에 관한 기술을 대폭 축소하는 등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일본의 시민단체인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 네트워크 21’ 등은 12일 도쿄(東京)에서 모임을 갖고 새 교과서 내용을 분석한 자료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특히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이번에 처음으로 제작한 교과서는 한국병합에 대해 “동아시아를 안정시키기 위해 필요했던 조치로서 구미 열강의 지지 속에 당시의 국제관계상 합법적인 방법으로 이뤄졌다”며 역사를 왜곡했다.

97년도판에서 일본군위안부에 대해 기술했던 기존 7개사 교과서 가운데 6개사의 책은 관련내용을 삭제하거나 표현을 바꾸는 방법으로 비인도적 범죄를 호도했다. 기존 교과서는 또 난징(南京)대학살, 731부대, 간토(關東)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 조선의 항일운동 등에 관한 기술도 완전히 삭제하거나 표현을 애매하게 바꾸었다.

또 97년도판에서는 7개사 모두 ‘침략’이라는 표현을 썼으나 새 교과서에서는 6개사가 ‘진출’로 표현을 바꾸거나 삭제했다. 이는 ‘침략’과 ‘진출’이라는 표현을 놓고 빚어졌던 82년 ‘일본 역사교과서 파동’ 이전으로 회귀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제2의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특히 일본의 우익 인사로 구성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만든 교과서가 가장 논란거리가 될 전망이다.

교과서 기술 내용이 후퇴한 것은 일본내 보수 우익의 강압과 최근 우경화하고 있는 사회분위기, 검정권을 쥐고 있는 문부성의 보이지 않는 압력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 네트워크 21’과 ‘교과서에 진실과 자유를―연락회’ 등 5개 단체는 이날 발표한 성명을 통해 “출판사가 기술 내용을 바꾼 것은 자발적인 의사가 아니라 정부와 문부성에 의한 정치적 압력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문부성은 11월 중 내용 수정을 요구하는 ‘검정 의견’을 제시한 다음 내년 초 수정본을 받아 검토한 뒤 3월말 경 합격 여부를 결정한다. 일선학교는 내년 7월 경 합격한 교과서 가운데 하나를 골라 2002년 4월 신학기부터 사용한다.

일본 역사교육자 협의회 이시야마 히사오(石山久男)사무국장은 12일 “일본의 교과서는 정도의 차는 있지만 지금까지는 헌법과 교육기본법을 토대로 만들어 왔다”며 “그러나 새로운 교과서는 이를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는 매우 위험한 교과서”라고 지적했다.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 네트워크 21’의 다와라 요시후미(俵義文)사무국장은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은 이 교과서를 일선학교가 채택하도록 하기 위해 시정촌(市町村)의회의원과 유력 인사, 교육위원 등을 상대로 조직적인 로비를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저지하기 위한 전국적인 시민조직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두 사무국장은 새 교과서가 모두 문부성의 검정을 통과할 것으로 예상했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中 "교과서에서 뺀다고 잊혀지라"▼

중국은 일본의 ‘역사 왜곡 문제’에 대해 “일본이 과거의 침략 역사를 정확히 인식해 교훈을 얻고 다시는 그 같은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느냐와 관련된 일”이라며 일본 출판사의 교과서 수정 움직임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중국 외교부 쑨위시(孫玉璽)대변인은 12일 외신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히고 “난징(南京)대학살과 일본군위안부, 731부대 등은 일본 군국주의가 저지른 엄중한 범죄”라며 “교과서에서 뺀다고 해서 역사가 잊혀지거나 희미해지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주룽지(朱鎔基)총리도 12일 베이징(北京) 중난하이(中南海)에서 일본 자민당 의원 일행과 만나 “중일간에는 여전히 몇 가지 문제가 있다”며 “서로를 보다 더 이해하고 신뢰를 다지지 않고는 진정한 우호관계를 이루기 어렵다”고 역사 왜곡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베이징〓이종환특파원>ljh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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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역사교과서 왜곡]北 "우리민족에 대한 모독행위"

일본 새역사 교과서 기술내용
항목기술 내용문제점
한국병합1910년 일본은 한국을 병합했다. 이는 동아시아를 안정시키는 정책으로서 구미열강으로부터 지지를 받은 것이었다. 한국병합은 일본의 안전과 만저우의 권익을 방위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었으나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이익을 가져온 것만은 아니었다. 당시로서는 국제관계의 원칙에 따라 합법적으로 이뤄졌다.강제합병을 전적으로 부인
태평양전쟁의 성격전쟁은 비극이다. 전쟁에 선악을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국가와 국가의 국익이 충돌, 정치적으로 결론이 나지 않을 때 최종수단으로 행해지는 것이 전쟁이다. 미군과 싸우지 않고 패배하는 것을, 당시 일본인은 선택하지 않았던 것이다. 침략전쟁 부인
가미카제특공대미국장병은 이를 ‘자살 공격’이라고 부르며 패닉에 가까운 두려움을 느꼈고 나중에는 존경하는 마음까지 갖게 됐다.무모한 공격의 찬미
조선반도에 대한 인식조선반도는 대륙에서 돌출한 팔이다. 일본에 대해 끊임없이 들이대는 흉기가 되기 싶다. 조선반도가 일본에 적대적인 대국의 지배 하에 들어가면 일본방위는 곤란해진다. 침략의 정당화
태평양전쟁의 초기 승리대동아전쟁 초기의 승리는 수 백 년에 걸친 백인 식민지지배에 신음하고 있던 현지인의 협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는 동남아시아와 인도, 아프리카인에게까지 독립에의 꿈과 용기를 길러줬다.사실관계의 왜곡
아시아민족의 저항그때까지 구미의 식민 지배 하에서 이익을 얻고 있던 사람이 항일 게릴라활동을 벌였다.사실에 반한 기술
조선 중국 멸시조선에서는 위기위식이 희박했다. 중국 조선 양국은 열강의 위협에 대해 일본처럼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사실왜곡
기타 문제점일본이 관여했던 전쟁이 침략전쟁이었다는 사실은 어디에도 기술되어 있지 않다. 일본군의 잔학행위나 조선 중국 동남아시아에서의 인적 물적 자원의 약탈행위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다. 중국의 난징(南京)대학살에 대해서도 ‘이 사건의 의문점은 많고 지금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전쟁 중이었으므로 얼마간의 살해가 있었다 하더라도 홀로코스트(인종대학살)와 같은 것은 아니다’고 기술. 연합군에게 항복한 것을 천황의 성단(聖斷)으로 미화하는 등 천황의 전쟁책임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다. 백제로부터 망명한 왕족이나 귀족에게 후한 대접을 해줬다고 기술하면서도 중국이나 조선반도로부터 문화와 문물을 전수 받은 데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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