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誌 뉴미디어시대 진단]인터넷 혁명은 환상이었나

  • 입력 2000년 8월 22일 18시 36분


《오늘날의 정보통신과 뉴미디어 혁명 시대를 선도하고 있는 인터넷은 과연 성공작인가.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 커버스토리에서 인류를 희망에 부풀게 했던 인터넷이 다양한 형태의 불평등과 단절감을 종식시키지 못한 채 콘텐츠와 경영의 문제까지 겹쳐 당초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진단을 내렸다.

유럽적인 시각에서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의 입장에 치중해 인터넷 혁명의 그림자를 조망(眺望)한 느낌이 적지 않지만, 2000년 8월 현재의 시점에서 인터넷 시대를 중간 점검해 보는 의미에서 자세히 소개한다》

▽장밋빛 이상(理想)〓1858년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통신 케이블이 처음 설치됐을 때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이 첫 등장했을 무렵 사이버 세계의 권위자들은 인터넷이 모든 국가간의 사상과 교류를 가능케 함으로써 전쟁을 막고 공해를 감소시키며 여러 종류의 불평등을 종식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같은 기대는 지나친 것이었다는 게 이코노미스트지의 지적이다. 전쟁은 사람들간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인터넷이라는 넓은 바다 속에는 갈등을 부추기는 증오의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는 것.

워싱턴의 에너지기후센터(CECS)는 97, 98년 미국 경제가 9%의 성장을 기록했지만 에너지 소비량은 변화가 없었다면서 이는 인터넷이 종이와 CD 같은 표현수단을 전자로, 트럭 같은 운송수단을 광케이블로 대체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중복으로 에너지 소비는 갈수록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다. 최근 미국 전기소비의 8%는 인터넷 사용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실패한 뉴미디어〓인터넷에 대한 기대로 지난 3년간 엄청난 돈을 투자한 뉴미디어 산업이 실패의 쓴맛을 보고 있다. 지난해 11월 상장된 NBC 인터넷방송의 주가는 이달초 10분의 1 수준으로 추락했다. 회사는 20%의 직원을 감원할 방침. 올 2·4분기에만 1억5200만달러의 손실을 기록했으며 2002년으로 예상한 손익분기점은 무기한 연기한 상태다.

뉴욕타임스지 인터넷판과 ‘더스트리트닷컴’ 같은 온라인 뉴스매체 역시 처음에는 유료 사이트로 시작했지만 경쟁력을 잃고 무료사이트로 탈바꿈했다. 연예 영화 전문 인터넷업체들의 전망도 어둡다. 6000만달러를 투입해 야심차게 출발했던 DEN사는 6월에 파산신청을 했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이 투자한 ‘팝닷컴’은 올초 문을 열 예정이었으나 아직도 깜깜 무소식이다.

▽불평등의 심화〓디지털 빈부 격차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미 상무부의 조사 결과 연소득 7만5000달러 이상인 가정의 인터넷 사용률은 최저 소득 계층보다 20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나 인터넷이 불평등을 해소시킬 것이라는 전망을 무색케 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그러나 인터넷 사용비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디지털 격차’의 진정한 이유는 빈곤층이 인터넷 사용을 피하기보다는 인터넷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해졌다. 즉 디지털 교육환경의 불평등이 빚어낸 결과라는 것. 미국에서 백인은 컴퓨터 보급률과 인터넷 이용률 면에서 흑인과 남미계에 비해 3배 정도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콘텐츠와 전송의 문제〓연예 산업에서 인터넷은 음악과 텍스트를 전달하는 데는 용이하지만 가장 중요한 영상은 그렇지 못한 게 약점이다. 책의 경우 스티븐 킹이 3월 전자소설을 인터넷상에 띄웠을 때 24시간 내에 40만명이 다운받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렇지만 소설을 컴퓨터상에서 읽는 사람은 별로 없으며 수백 쪽을 인쇄해 갖고 다니면서 읽을 사람은 더욱 없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올 가을 MS와 아도베사가 온라인상의 독서를 쉽게 해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예정이지만 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이같은 지적들에도 불구하고 이코노미스트지의 분석은 디지털 경쟁에서 미국에 비해 많이 뒤진 유럽적 시각에 치중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디지털과 인터넷 혁명의 어두운 모습들만 집중 해부한 채 인터넷이 인류에 가져다 준 시공(時空)의 절약 개념, 세계 경제에 미친 거대한 파급 효과, 국경과 계급을 초월하는 정보 민주주의 출현 같은 거시적 효과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은 것이다.

<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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