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도쿄]심규선/황실은 日에 어떤 존재인가?

  • 입력 2000년 6월 19일 19시 40분


16, 17일 이틀 밤 일본 도쿄(東京)의 명물인 도쿄 타워의 불이 꺼졌다. 도쿄시내의 웬만한 곳에서는 바라볼 수 있는 타워의 불이 꺼지자 도쿄의 밤 하늘이 왠지 허전해 보였다. 도쿄 타워 소등은 16일 타계한 황태후의 명복을 비는 조의의 표시였다. 경마도 일시 중지됐다. 그리고 일부 건물에는 조기가 걸렸다.

일부 신문은 16일 호외를 발행했다. 17일자 전 조간신문의 1면 머리기사는 예외없이 ‘황태후 서거’ 뉴스였다. 몇개면을 털어 특집기사도 꾸몄다. 방송도 마찬가지였다. 시간마다 톱뉴스로 황태후 서거를 전했다. 일부 방송은 19일까지 추모프로그램을 내보냈다.

일본 매스컴의 이런 보도 태도는 ‘황실은 일본인에게 어떤 존재인가’라는 의문을 새삼 가지게 한다. 평소 황실에 대한 뉴스는 극히 제한돼 있다. 일본 언론은 평소에는 황실 주요인사의 해외 순방이라든지 신년 연례 인사, 황족의 생일에 맞춰서 여는 공식적인 기자회견 외에는 거의 취급하지 않는다. 이를 보면 황실이 일본의 현실정치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에 수긍이 간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증거도 곳곳에 있다. 일본 집권 자민당이 이번에 중의원 해산시기를 저울질할 때 고려한 것 중에 하나가 천황의 해외순방이다. 천황의 해외 순방중에는 국회를 해산한 적이 없다는 이유로 천황이 유럽순방에서 돌아오는 1일까지 기다렸다 이튿날인 2일을 해산일로 결정했다. 이를 놓고 일부 헌법학자들은 “정치가 황실을 정치에 끌어들인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가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한 신의 국가”라는 발언으로 곤욕을 치르고도 결국 철회를 하지 않은 것도 황실이 나이 많은 정치가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엿보게 한다.

이에 대해 일본의 한 대학교수는 “한국의 종갓집을 생각하면 이해가 갈 것”이라고 말했다. 평소 종갓집과 별로 교류가 없더라도 종갓집이 잘되면 기분이 좋고 그렇지 않으면 언짢은 것이 인지상정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 일본인 기자는 “공기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평소에는 인식하지도 못하고, 고마워하지도 않지만 없어서는 안될 존재라는 풀이다. 한 일본인 대학원생은 “황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서도 “그러나 만약 다른나라 사람이 일본 황실에 대해 나쁘게 얘기하면 틀림없이 반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대화의 연장선상에서 현재 한일간에 논의되고 있는 천황의 한국방문을 생각해본다. 일본은 아직 한국에서 천황을 맞을 분위기가 성숙되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만약 천황이 한국을 방문했다가 ‘불상사’라도 당하면 내각이 총사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잠재적이든 현실적이든 일본의 황실은 일본국민의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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