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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6월 9일 19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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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남북정상회담에 즈음해 대북 제재를 일부 완화키로 한 것은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북돋우고 남북관계 개선에 긍정적인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 국무부의 한 당국자는 8일 “미국은 작년 9월 북한과의 베를린협상에서 합의한 대북 제재 완화방안의 구체적인 이행계획을 검토해 왔으며 이를 곧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당시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의 추가 시험발사를 유예하는 조건으로 대북 금수(禁輸)조치를 해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제재 완화방침을 발표했었다.
따라서 미국이 이번에 그에 따른 이행계획을 내놓기로 한 것은 북한이 국제사회를 자극하는 행동을 자제할 경우 응분의 ‘당근’이 제시될 것임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북한이 대량살상무기 개발 대신 대화와 협상을 선택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지난해 베를린협상 이후 북-미 관계가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를 택해 대북 제재 완화방침을 이행키로 한 것은 남북정상회담으로 고조된 한반도의 화해와 협력무드를 더욱 고취시키려는 전략적 고려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그러나 이번에 발표할 제재 완화조치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당장 제외하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이달 안에 재개될 북-미 미사일협상에서 북한의 미사일 개발 배치 수출 중단에 더 진전이 있을 경우 미국의 대북제재 완화폭은 보다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이번에 발표할 예정인 제재 완화 이행조치는 북한의 요구수준에 못미칠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이 그 동안 미국에 대해 “말만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고 불평해 온 것에 비춰보면 나름대로 대북 약속의 실천이자 북-미관계의 한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
▼北에 非核化 준수촉구 배경▼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양영식(梁榮植)통일부차관의 9일 발언은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 핵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논의할 것인지를 시사한 정부당국자의 첫 공식언급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의 발언은 정상회담에서 남북이 민감한 문제로 서로 부닥치는 상황을 가급적 피하면서 92년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북측에 상기시키는 선에서 미국측 입장도 수용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사실 한국과 미국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미묘한 입장차를 보였다. 한국이 남북간 화해협력을 중시하면서 ‘민감한 문제들’을 뒤로 돌리려 한 반면 미국은 대량살상무기 억제라는 세계전략차원에서 정상회담을 바라보았다. 이같은 ‘우선순위’에 대한 시각차가 한때 한미간의 ‘이견설’을 낳기도 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당초 “남북 정상이 만나는 것 자체만으로 큰 의미가 있다”며 “쉬운 것부터 풀어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북한 핵 미사일문제 등을 정면으로 다룰 경우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나 국가보안법 철폐 등 ‘근본문제’를 들고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이럴 경우 회담 자체가 결렬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부담을 피하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미국이 정상회담 의제에 이 문제를 포함시킬 것을 집요하게 요구해오자 ‘비핵화 공동선언의 준수 촉구’라는 절충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 공동선언은 남북한이 핵무기의 제조 시험 생산 보유 저장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고 이를 감시하기 위한 ‘남북 핵통제공동위원회’의 가동을 명시하고 있다. 비핵화 공동선언이 실현될 경우 북한 핵에 대한 우려를 원천적으로 불식시킬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 해결될 사안은 아니라는 게 정부당국자의 설명이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