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푸틴 '核카드'사용 빈번…舊蘇회귀 우려

  • 입력 2000년 6월 7일 19시 55분


푸틴의 러시아는 옛 소련의 영화(榮華)를 꿈꾸는가.

지난달 7일 러시아대통령에 취임한 블라디미르 푸틴이 핵과 미사일 카드를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아직도 미국과 유일하게 필적할 만한 핵 군사 강국인 러시아의 이같은 움직임은 세계의 안보 지형, 특히 동북아 안보 구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정부 관련부처 및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푸틴의 카드〓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제원자력기구(IAEA) 비회원국에 핵 물질과 기술, 장비 등의 수출을 허용하겠다고 밝혀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이는 사실상 IAEA와 핵확산금지조약(NPT)체제로 전 세계의 핵 비확산 체제를 유지하려는 미국에 대한 도전이나 다름없었다.

푸틴 대통령은 4일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가진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제의한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 구축에 반대했다. 그러나 곧 이어 가진 유럽 방문에서 유럽국가들과 공동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할 용의가 있다고 밝혀 미국의 신경을 건드렸다.

앞서 러시아는 지난달 30일 임계량 미만의 핵실험은 계속하겠다고 공표했다. 이달 3일에는 폐기 핵무기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을 일본에 수출할 용의가 있다고 발표, 동북아 국가들을 긴장케 했다.

뿐만이 아니다. 러시아 관영 이타르타스 통신은 지난달 29일 러시아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약 100기를 외국의 상업위성 발사를 위한 위성발사체로 전용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핵기술뿐만 아니라 미사일 기술의 수출도 시사한 것이다.

▽러시아의 의도〓러시아가 본격적으로 핵과 미사일 카드를 꺼내기 시작한 것은 일단 러시아의 ‘잉여 핵 기술’과 남는 무기 판매 등을 통해 경제난을 타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단순히 경제적 목적 때문만은 아니라는 게 러시아 현지 소식통들의 유력한 관측.

러시아가 가장 앞서 나간 분야인 핵과 군사 분야의 잠재력을 동원, 새로운 ‘슈퍼 파워’로 자리매김 받으려는 의도를 포함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푸틴이 대통령 취임 직후인 지난달 9일 2차대전 승전 55주년 기념일을 맞아 구소련 붕괴 이후 중단된 군사 퍼레이드를 10년만에 부활시킨 것이 그같은 의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는 분석이다. 이를 위해 고르바초프 시대 이후 ‘고개를 숙여온’ 미국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대립각을 세우려 한다는 것.

▽영향과 전망〓군사강국 러시아의 이런 움직임은 장기적으로 세계의 군비경쟁을 촉발시킬 변수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 러시아에 탄도탄요격미사일(ABM) 개정을 촉구해온 미국의 앨 고어 부통령이 6일 ABM 탈퇴를 시사한 것도 러시아의 최근 움직임에 대한 반작용으로 볼 수 있다.

옐친 시대 이후 사실상 겨울잠을 잤던 ‘시베리아 불곰’이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켜자 중국과 일본 등 동북아 열강은 물론 한국 정부도 동북아 파워게임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는 상황이다. 외교통상부의 한 당국자는 “4강 가운데 유일하게 러시아에 대해서만 호락호락하게 생각했던 우리의 외교 패턴을 바꿀 때가 됐다”고 말했다.

<박제균기자·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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