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 인권개입 어떻게 볼것인가]美-中 전문가 대담

  • 입력 2000년 5월 29일 19시 28분


분쟁지역의 인권문제에 대한 강대국 개입의 타당성이 논란되고 있는 가운데 인권문제 전문가인 미국 덴버대 잭 도넬리(Jack Donnelly)교수와 미중(美中)관계전문가인 중국사회과학원 미국연구소 왕지시(王緝思)소장이 방한해 26일 대담을 가졌다. 이들은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사무총장 권태준)와 한국국제정치학회(회장 김동성·중앙대교수)가 최근 공동주최한 ‘새천년의 세계질서와 평화’ 세미나 참석차 방한했다. 사회는 한국국제정치학회 전 회장인 임용순교수(성균관대)가 맡았다.

▼대담자▼

- 잭 도넬리(美 덴버대 교수)

- 왕지시(중국사회과학원 미국연구소 소장)

- 사회 : 임용순(한국국제정치학회 전회장·성균관대 교수)

▽임용순〓지금까지 우리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인권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왔습니다. 인권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먼저 인권의 개념부터 정리해야겠습니다.

▽왕지시〓실제로 보편적인 ‘인권’의 기준을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중국의 경우만 해도 인권과 국가의 문제는 최근에야 학자들 사이에 비공식적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인권을 국가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인권보다 경제문제가 더 근본적입니다. 그렇지만 인권은 중국인의 생활 속에서 기본적인 권리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잭 도넬리〓국가와 사회마다 인권의 의미가 다르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럼에도 인권은 지난 10년 동안 매우 중요한 문제로 부상했음이 분명합니다. 미국의 경우 인권을 외교정책에만 적용하고 국내문제에는 적용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동성애의 권리 문제, 경찰의 잔인성, 인종차별 등은 바로 미국의 인권문제입니다.

▽임〓최근 서구 강대국이 인권문제를 이유로 코소보 시에라리온 등의 국내문제에 개입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인권 침해가 국권 침해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 또 이것이 타당하다면 어느 정도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등이 문제가 됩니다.

▽왕〓물론 주권국가에 개입할 권리는 없지만 국제적 긴장을 불러 일으킬 경우에는 개입이 논의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우선 국가간의 협의가 있어야 합니다. 인권의 기준이 논란은 되지만 학살, 고문, 정치적 박해 등이 인권침해인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누가 어떻게 판단하느냐의 문제입니다. NGO의 경우도 간여할 자격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명히 구분해야 합니다. 민주국가에서 정부는 민주적 절차를 거쳐 만들어지지만 NGO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코소보나 시에라리온의 경우는 인권문제가 아니라 대량학살의 문제입니다. 문제는 언제 어디서 누가,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을 때 개입해 행동할 권리를 갖는가 하는 겁니다. 이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코소보와 같은 대량학살이 아니라 논의의 수준을 낮춰서 생각해야 합니다. 인권에 대한 서구적 기준은 아시아와 다르지만 인권의 기본적인 기준은 비슷합니다. 고통은 놀랍도록 보편적이기 때문입니다.

▽임〓중국의 경우에 개인의 정치적 참여와 관련해 천안문사태나 파룬궁사태 등이 문제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왕〓중국에서 발언의 자유는 거의 완벽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조직화입니다. 파룬궁은 단지 건강 수련단체가 아니라 정부의 통치와 정책에 반대하는 조직입니다. 통치에 도전하는 것의 조직화는 사회를 불안정하게 합니다. 서구적 기준의 민주주의나 인권침해라는 개념은 언제부터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정부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 나라를 다스려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때 많은 문제가 발생하지만 중국의 궁극적 목표가 사회주의 안에서 고도로 문명화 민주화되고 풍요로운 국가를 이루는 것이라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임〓티벳 문제도 인권과 관련이 있습니다. 상당히 광범위한 인권침해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원한다면 독립을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왕〓티벳에 가 봤지만 별다른 인권침해를 보지 못했습니다. 문제가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티벳은 코소보나 체첸이 아닙니다. 심각한 인권침해나 박해는 없습니다. 상당히 안정된 사회이고 한족과 티벳인들 사이에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시장제도의 도입, 공공교육 등을 보면 오히려 중국보다 나은 점이 있습니다.

▽도〓티벳의 문제는 인권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출 수 없습니다. 문제는 이해관계에 의한 단체의 조직을 막는다는 데 있습니다. 종교나 이해 등으로부터 생겨나는 조직이 정부보다 자신의 이익을 실현하는 데 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왕〓중국에서는 국민이 복지 식량 거주 직업 등을 모두 정부에 의존합니다. 정부에 불만이 있을지라도 널리 퍼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문제가 생겨도 정부를 통해 해결합니다. 정부는 국민을 통제하지만 역으로 국민은 정부에 해결을 요구합니다.

▽임〓인권문제는 사회현실과 직접 연관된 문제라서 논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간접적인 방법으로라도 인권문제의 해결 노력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는 점에는 모두 동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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