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만학열기]"정보화…국제화…배워야 산다"

  • 입력 2000년 4월 25일 22시 40분


《삼성투신운용의 황영기(黃永基) 대표이사는 요즘 남북정상회담 관련 기사를 꼼꼼히 읽고 있다. 남북관계가 주가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있지만 최근에 남북문제를 포함한 국제질서변화를 공부한 것이 더 큰 이유다. 서울대 국제지역원이 개설한 ‘글로벌 리더십 과정’을 마친 황대표는 “미국과 중국 등 주변 강대국이 어떤 관점에서 남북한 문제를 접근하는 지를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경영환경이 급격히 변하면서 황대표처럼 만학(晩學)에 나서는 최고경영자(CEO)들이 늘고 있다.》

CEO들은 일상적인 경영활동이외에 정보통신기술혁명, 남북관계를 포함한 국제질서 변화 등에 대해 새로운 지식과 안목을 요구받고 있는 상황. 주요 기업 CEO들은 이같은 변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국내외 대학의 장단기 교육과정과 사내교육프로그램에 적극 참가하고 있다.

대부분의 CEO들은 만학의 경험이 실제 경영에 많은 도움이 된다며 기회가 닿는대로 다양한 교육을 계속 받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공학도가 북한전문가 변신▼

▽정규과정에 참여, 제대로 공부한다〓현대아산 김고중(金高中) 부사장은 올해 봄학기부터 경남대 북한학과 대학원과정에 등록했다. 그룹내 최고의 북한통으로 불리는 김부사장은 전북대 화학공학과를 나온 공학도. 하지만 입사이후 남북경협 실무자회담을 거치면서 현대그룹의 남북경헙을 이끌어 왔다. 이론과 실기를 겸비하여 명실공히 북한전문가가 되겠다는 게 김부사장의 목표.

삼성그룹은 전무이상 CEO중 6명을 선발, 올 가을에 미국 스탠퍼드대학 1년짜리 CEO전략과정에 보내기로 했다. 이에 앞서 지승림 삼성중공업 부사장은 스탠퍼드대학에서 객원연구원을 했다.

서울대의 글로벌 리더십과정에는 황영기대표, 박세용(朴世勇) 인천제철회장 등 대기업 CEO 40명이 참가했다. 작년 11월부터 올 2월까지 4개월동안 진행된 과정은 매주 화, 목요일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3시간 동안 진행됐다. 강사는 스티븐 보스워스 주한 미국대사 등 국내외 저명인사. 보스워스 대사는 미국의 안전보장전략에 대해 강의했다.

황대표는 “해외출장을 제외하곤 강의에 빠짐없이 참석했다”며 “솔직히 예복습을 하지는 못했지만 강의를 통해 세계의 변화를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인터넷교육 너도나도▼

▽틈나는대로 공부한다〓인천제철 오병문(吳炳文)사장은 5월과 6월 두달 동안 사내 전산교육을 받기로 했다. 사내 교육에 참가해 인터넷 기술을 습득하고 정보통신 산업에 대해 연구한다는 계획이다. 조선공학을 전공했던 현대중공업 조충휘(趙忠彙)사장은 2월 발족한 정보화사업팀 담당 실무자들을 수시로 불러 정보통신 사업의 현황과 전망을 익히고 있다.

포항제철의 유상부(劉常夫)회장도 생산공정 통합(PI)사업을 위해 협력업체인 오라클의 컨설턴트들을 직접 불러 시뮬레이션 점검 방법 등을 조언받고 있다.

SK계열사 사장단 20여명은 지난주부터 본사에서 한국과학기술원 테크노경영대학원출신의 벤처사업가들을 불러 e비즈니스 경영자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11개월 MBA코스 개설▼

▽체계적인 CEO 교육이 필요하다〓삼성경제연구소 공선표(孔善杓)이사는 “경영환경이 급변하다보니 모든 CEO들은 만학도가 될 수 밖에 없다”며 “정규과정이 아니더라도 비정규과정을 통해 새로운 지식과 사고를 끊임없이 흡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대기업들의 분사화 과정에서 정보통신기술에 대한 이해, 국제감각, 영어구사능력을 갖춘 CEO의 필요성이 늘어날 것이라는 것.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그동안 각종 교육프로그램이 부족해 CEO들이 제대로 공부하기는 어려웠다. 이에 따라 우선 급한대로 단기과정을 통한 CEO 재교육의 필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공이사는 내다봤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처럼 우리도 과장 때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며 “대기업이 여러 회사로 쪼개지면서 자질을 갖춘 CEO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CEO 교육수요를 감안하여 최근 미국 보스턴대와 제휴, 국내 CEO들을 대상으로 11개월내 경영학석사(MBA)학위를 취득하는 코스를 개설했다. 이번 프로그램은 국내 6개월, 미 보스턴 5개월 등 11개월 동안의 압축수업방식으로 전 과정을 영어로 진행한다. 다음달부터 교육대상자를 선발하여 내년 1월부터 제1기 과정에 들어간다.

<임규진·이병기·정위용기자>mhjh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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