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STARTⅡ 승인 배경]푸틴 英방문 앞둔 '화해 제스처'

  • 입력 2000년 4월 15일 00시 12분


러시아 하원의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Ⅱ) 비준으로 핵무기 감축 협상이 진전을 보게 됐다.

STARTⅠ 협정에 따라 98년까지 미국은 핵탄두를 1만여기로, 러시아는 8000여기로 줄였다. 지난해 8월 시작된 STARTⅢ는 핵탄두를 미국은 2500기, 러시아는 2000기로 줄이는 것이 목표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권한대행은 비준안 통과 후 핵탄두를 1500기까지로 줄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푸틴은 대통령 당선 후 이날 처음으로 하원을 방문해 비준을 촉구했으며 곧이어 하원의 승인을 받아냄으로써 정치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푸틴은 이날 핵무기를 통제하는 ‘핵 가방’을 든 수행원과 함께 나타나 의지를 관철했다.

러시아 정부는 91년 3월 협정을 조인한 후 비준을 얻어내려 했으나 공산당이 장악한 하원은 7년이나 승인을 거부해왔다.

공산당 소속 의원들은 14일 국방력 약화를 내세워 비준을 반대했으나 표결에서 졌다. 지난해 12월 총선을 거치며 공산당이 의회 지배력을 상실했음을 드러낸 것이다. 비준이 된 다음에도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 당수는 “몇 년 후면 러시아군은 무력해질 것”이라며 불만을 나타냈다.

푸틴이 비준을 서두른 것은 17일 영국 방문을 앞두고 체첸전쟁으로 악화된 서방과의 관계를 복원하려는 제스처란 분석이 많다.

다만 푸틴은 이날 그동안 미국이 주장해 온 탄도탄 요격미사일(ABM) 협정 개정에 반대한 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미국 상원이 지난해 10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을 부결한데 이어 미국 정부가 ABM 개정을 계속 추진하면 미국이 추진중인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 구축 등을 놓고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핵탄두 공격으로부터 방어를 위해서는 NMD가 필요하므로 ABM 협정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푸틴은 비준이 된 뒤 “이제 공은 미국에 넘어갔다”며 미국에 대해 72년 당시 소련과 맺은 ABM협정 개정을 포기하라고 요구했다. 개정을 계속 시도하면 STARTⅡ를 비롯한 전략무기와 재래식무기 감축합의를 철회하겠다는 경고를 곁들였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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