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야스쿠니神社 르포]일장기 '빽빽' 군가 '꽝꽝'

  • 입력 1999년 8월 15일 18시 45분


일본의 ‘종전(패전)기념일’인 15일. 낮기온이 33도까지 치솟았다. 도쿄(東京)야스쿠니(靖國)신사는 하루종일 히노마루(일장기)와 우익단체 깃발이 휘날리고 기미가요와 군가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오전 6시 문이 열리자 지방에서 올라온 집단 참배객들이 속속 입장했다. 전세버스에서 내린 이들은 와카야마(和歌山) 히로시마(廣島) 야마가타(山形)현 등의 깃발을 앞세우고 100∼200여명씩 줄지어 신사로 들어왔다.

9시30분. ‘영령에 보답하는 모임’이라는 단체가 마이크로 연설했다. “총리가 이웃나라 때문에 공식참배를 안하겠다니 도대체 어느나라 사람인가.”

조금 뒤 기독교신자인 중고생 60여명이 참배했다. 인솔교사는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치신 영령들에게 마음속으로부터 깊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묵도!”라고 외쳤다.

10시 정각. 참배단 부근에서 100여마리의 흰비둘기가 날아올랐다. ‘야스쿠니신사 흰비둘기 모임’의 사회자는 “영령들은 반드시 오늘 여기 오셨을 것”이라며 “함께 ‘감사합니다’를 외치자”고 유도했다.

10시20분. 옛 일본군 해군복 차림에 어깨총을 한 노병사 20여명이 욱일기(旭日旗)를 앞세우고 밴드소리에 맞춰 들어왔다.곧 이어 ‘대일본 천성단(大日本天誠團)’이라는 우익단체 회원들이 히노마루 등을 들고 참배단 앞에 섰다. 깃발에는 ‘존황토간(尊皇討奸, 천황을 받들어 간사한 무리를 물리친다)’ ‘성전(聖戰) 대동아전쟁’이라는 문구도 있었다. 이들은 기미가요를 제창한 뒤 ‘125대 천황(현 천황)만세’를 외쳤다.

10시55분. 참배를 마치고 나오던 마나베 겐지(眞鍋賢二)환경청장관은 “총리 등이 공식참배할 수 있는 환경정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8명의 각료가 오전 중에 참배를 마쳤다.

11시35분. 참배단 부근에서 70대 노인끼리 싸웠다. 전쟁에서 친구를 잃었다는 노인이 “전쟁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 것이 발단. 옆의 다른 노인이 “당신같은 사람이 있으니까 나라가 안돼!”라고 반박해 멱살잡이까지 갔다.

11시59분. 군복차림의 노인(74)이 목총을 들고 눈물로 연설했다. “매년 여기에 오지만 오늘은 예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온 것 같다. 너무나 감격했다…요즘 젊은이들 너무 변했다. 그러면 나라는 어디로 가나….” 박수가 쏟아졌다.

정오. 신사 전체가 일순 정적에 빠졌다. 합동묵념. 곧이어 마이크를 통해 ‘천황의 말씀’이 흘러 나왔다. “불행한 전쟁이 재발하지 않기 바라며 세계평화와 우리나라가 한층 더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우익단체들은 확성기를 단 검은색 버스로 신사주변을 맴돌며 군가를 계속 틀었다. 한쪽에서는 ‘가미카제(神風)’ ‘인간어뢰’ 등 특공대의 공적을 찬양하는 그림전시회가 열렸다. 정오가 지나자 신사정문에서 참배단까지 이르는 100여m의 도로는 발디딜 틈도 없었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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