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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4월 28일 20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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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12시가 가까워 오자 타히르 악스마이카가 이끄는 17∼36세의 KLA 대원 20명은 마케도니아의 캠프를 떠났다. 이들은 지뢰를 피하기 위해 염소 두 마리를 앞세우고 코소보로 향했다. 이중 12명은 코소보주 난민출신. 6명은 알바니아인, 독일과 스위스 출신 알바니아인이 각각 1명이었다.
KLA훈련캠프에서 두 달간 훈련을 받았을 뿐이다. 군복도 따로 없다. 해외에서 산 미군이나 독일군 군복, 또는 알바니아군복 차림이다. 어깨에는 KLA 마크가 선명하다. 무기는 중국산 AK47소총과 박격포.오전 2시15분경. 첨병이 “1백m 앞에 모닥불이 있다”고 알려오자 모두 나무와 바위 뒤로 숨는다. 코소보에서 쫓겨난 22명의 알바니아계 난민들로 확인됐다.
난민들은 유고의 인종청소를 피해 4박5일간 걸어왔다고 한다. 진눈깨비로 물을 만들어 마시고 산에서 열매를 따먹으며 허기를 채웠다. 담요를 덮고 모닥불을 쬐는 아이들의 몸이 덜덜 떨리고 있다. 오는 도중 한 난민이 저격당해 숨졌다고 한다. 어린 아들이 그를 묻어야 했다.
KLA병사들은 행군을 잠시 계속하다 산등성이에서 6시까지 휴식을 취했다. 다시 행군을 하던 중 멀리 연기가 오르고 총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줄달음쳤다.
카차니크 외곽의 작은 마을에서 유고군을 발견한 것이다. 집안에서 TV 냉장고 등을 들고 나와 트럭에 실은 다음 집에 불을 지르거나 수류탄을 던지고 있었다. 유고병사들의 웃음소리가 멀리까지 들려왔다.
악스마이카는 즉시 휴대전화로 마케도니아 캠프의 동지들에게 연락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에게 현재 상황을 연락하도록 지시했다. 공습목표를 알려주는 것이다.
악스마이카는 잠시 후 “유고군을 모두 사살하라”고 지시했다. 병사들은 길가에 잠복한 채 유고군 트럭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2시간 뒤 유고군 트럭이 나타났다. 일제히 총과 박격포를 발사했다. 트럭 1대가 불타고 2명의 유고군이 나뒹굴었다.
유고군은 기관총으로 반격했다. 총알이 바람을 가르며 머리 위를 스쳐 날아갔다. 포탄 3발이 KLA병사 근처에 떨어지자 후퇴를 시작했다.
유고군이 추격해왔다. KLA병사들이 얼음판을 미끄러져 내려간다. 한 대원이 넘어져 머리에 피가 흘렀다. 수류탄이 터지며 파편이 튀어 올랐다. 2명이 쓰러졌다. 한 사람은 다리에 총알 두 발이 박혀 신음했다.
계속 수류탄이 터졌고 대원중 스칼라가 목과 얼굴에 중상을 입고 울부짖었다. 다시 수류탄이 터지며 한 대원의 몸이 2m가량 떠올랐다 떨어지며 팔이 부러졌다.
5분간의 유고군 공격으로 20명의 대원 중 6명이 부상했다. 스칼라는 가망이 없어 보인다. 부상병을 운반해 마케도니아로 돌아오니 저녁 8시. 12명의 대원이 마중을 나왔다. 출동에서 돌아온 대원들은 모두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스위스에서 온 대원은 ‘무모한 전투’에 절망했다.
다음날 스칼라가 숨졌다. 오후에 열린 장례식에서 한 대원이 추모사를 읽었다. ‘그는 자랑스럽게 싸우다 죽었노라’고.
〈정리〓김태윤기자〉terren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