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케이츠 칼럼]「가정 자동화」속도 빨라진다

  • 입력 1998년 8월 4일 19시 35분


내 침대에는 작은 캐비닛 하나가 딸려 있다. 버튼을 누르면 40인치 스크린이 열린다. 아내와 나는 잠들기 전 이 스크린으로 뉴스나 영화를 보기도 하고 전자앨범도 넘겨 본다. 또다른 버튼을 누르면 스크린은 얌전하게 캐비닛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어느날 밤 이 스크린이 말썽을 일으켰다. 홈 오토메이션(HA)이 잘 된 새 집으로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잠을 자려고 버튼을 눌렀는데도 이 녀석이 물러나기는 커녕 고집스럽게 어둠 속에 버티고 있었다. 결국 다음날 누군가 와서 손봐준 덕택에 지금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이 스크린을 사용하고 있다.

HA시대의 개막은 얼마 남지 않았다. 다양한 방법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이른바 ‘데이터 접속’이 쉬워졌다. 이제 HA기술은 무르익었고 사람들은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처럼 보인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집에는 아무 생각없이 사용하는 갖가지 장치들이 딸려 있다. 토스터나 전기스위치, 리모컨으로 작동하는 TV 등은 어느 가정에서나 눈에 띈다. 마이크로웨이브 오븐이나 차고 개폐장치도 마찬가지다.

이같은 기술은 혁신적인 아이디어였지만 일반 가정에 보급되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수세식 화장실이 좋은 예. 수세식 변기는 1596년 영국의 한 시인이 발명한 뒤 1백80여년이 지난 1778년 영국 엔지니어가 개량해 특허를 취득했다. 하지만 유럽과 북미의 가정에 수세식 화장실이 흔해진 것은 불과 1백여년 전부터. 수세식 장치는 처음에 청소도구를 넣는 창고에 등장했다가 욕실로 옮겨졌다. 당시 욕실은 비좁은 공간이었는데 가족들이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지금처럼 넓어졌다.

TV 역시 비슷한 패턴. 약 50년 전 거실에 등장한 TV는 이제 침실로 옮겨졌다. 요즘엔 식구수보다 더 많은 TV를 보유한 가정도 드물지 않다. 평수가 넓은 집에서는 TV와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미디어 룸’을 만들기도 한다.

앞으로는 집집마다 생활 공간과 구분되는 작업실을 따로 마련하는 유행이 생겨날 지도 모르겠다. 재택근무가 보편화되고 소호족이 늘면 가정에도 충분한 작업공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일리가 있는 얘기다. 새로운 기술이 일상 생활에 흘러드는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있다. 대문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를 TV로 모니터하고 인터넷을 검색하는 방법도 등장할 것이다. 결국 컴퓨터가 소리없이 집안 구석구석을 통제해 주는 시스템이다.

홈 오토메이션 기술은 사용자 편의를 위해 무선으로 구현되거나 전화 전기처럼 가정에 들어와 있는 동축선을 이용해 신호를 보내게 될 것이다. 디지털 데이터들은 기존의 서비스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동일한 케이블을 타고 가정으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미국에서는 광케이블 전화선을 한데 묶어 집안 곳곳에 연결시켜 놓은 ‘스트럭처드 와이어링’(Structure Wiring)이 등장했다. 일반 가정의 안방에서 첨단 통신기기를 이용할 수 있는 기본 설비로 가격도 저렴하다. 그러나 어떤 기술이 사람들의 마음에 쏙 들어 라이프 스타일까지 바꿔 놓게 될 지는 단정하기 힘들다. 스크린을 꺼냈다 감췄다 할 수 있는 침대부착형 컴퓨터TV가 유력할 듯 보이지만 그것도 장담할 수는 없다.

〈정리〓정영태기자〉ytce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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