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현장 리포트/美 「전자정부」]민원줄고 인력절감

  • 입력 1998년 2월 11일 19시 51분


미국 실리콘밸리의 중심지인 팔로알토. 이곳에 사는 로드니 하이스터버그는 매달 한번씩 집에서 쓴 전기 수도 가스의 사용량을 컴퓨터에 입력한다. 이 자료는 인터넷을 통해 곧바로 시청의 담당 직원에게 접수되고 요금고지서가 자동으로 발부된다. 검침원이 집집마다 방문하지 않아도 원격검침이 이뤄지는 것이다. 아직 시범서비스 단계여서 모든 가정에서 인터넷 원격검침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정부는 이 서비스가 확산되면 상당한 인력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 지방정부중에서 가장 먼저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한 팔로알토시는 인터넷으로 다양한 대민(對民)서비스를 제공한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도시답게 시청 공무원 1천여명중 70%가 PC를 능숙하게 쓰고 주민들도 75%가 인터넷을 사용한다. 팔로알토시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공공시설의 이용방법에서 예술 문화행사안내, 시와 인근 지역의 지도, 교육제도와 아동교육 등 그야말로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정보가 자세하게 담겨 있다. 심지어 애완동물 기르는 법과 관련 시설에 관한 정보도 있다. 팔로알토시는 인터넷으로 24시간 민원서비스를 실시한 후 주민들의 시청방문과 문의전화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주민들이 시청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건수는 하루 6천여건. 시정부는 앞으로 민원인이 인터넷을 통해 건축허가 등 인허가업무를 여기저기 헤매지 않고 한군데서 ‘원스톱’으로 처리하도록 만들고 시청에서 구매하는 물건은 모두 전자우편과 전자결제를 통해 온라인으로 처리할 계획이다. 클린턴대통령이 93년 “정보기술을 통한 리엔지니어링을 추진,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후 미국의 주정부들은 정보화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른바 ‘전자정부’의 출현이다. 매사추세츠주는 물건 살 때 바가지를 썼다든지 공무원의 서비스가 불만스러울 때 주정부에 고발하는 ‘전자신문고’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미시간주는 주정부에서 만든 각종 통계를 인터넷에 올려 주민들이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하고 있다. 대부분의 주정부는 면허 세금 대학입학 등에 관한 정보를 주민들이 아무 때나 온라인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놓았다. 직장인이 은퇴하면 얼마나 연금을 받을 수 있을지 인터넷으로 미리 알아보는 것도 가능하다. 수도 워싱턴DC에는 세계 컴퓨터업체의 거인 IBM이 운영하는 전자정부연구소가 자리잡고 있다. 이 연구소는 연방 정부와 주정부가 추진하는 전자정부의 주요 서비스 내용과 이를 가능하게 한 정보통신기술을 일반인에게 널리 알릴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곳에는 다른 나라의 정부 관계자와 언론인 기업인이 자주 찾아와 미국의 전자정부 추진현황을 살펴보고 돌아간다. 건물 내부의 방마다 전자정부 서비스로 인해 관청 가정 사무실 학교 도서관 법원 경찰 등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게 꾸며져 있다. 연구소의 홍보담당 티모시 해커먼은 “미국 정부는 복지 환경 납세 무역 등 거의 모든 정부업무를 ‘국민이 원하는 수준으로 서비스한다’는 목표하에 야심찬 전자정부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용 빈도가 높거나 비용절감 가능성이 큰 행정서비스를 우선적으로 개발하고 2000년 1월까지 모든 미국인이 이런 서비스에 전자적으로 접속할 수 있게 한다는 것. 그는 현재 미국 주정부의 60% 이상이 인터넷에 관한 법률을 이미 제정했다고 밝혔다. 아무리 정부에서 전자정부서비스를 만들어도 ‘그림의 떡’인 사람도 많다. ‘정보화 선진국’ 미국이지만 컴퓨터나 인터넷을 사용할 능력이 없는 컴맹이 많기 때문.이들을 위해서는 무인단말기(키오스크)가 유력한 서비스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백화점 지하철역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설치된 키오스크는 터치스크린방식 등 간단한 조작으로 정부에서 제공하는 민원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가령 콜로라도주에 설치된 키오스크를 이용하면 20분 이내에 자동차 면허증을 새 것으로 바꿀 수 있다. 신용카드를 이용해 화면에서 안내하는 대로 따라 하면 기계에 내장된 프린터에서 면허증이 출력된다. 교통위반 범칙금도 키오스크에서 낼 수 있다. 작년 7월 클린턴대통령이 ‘인터넷 전자상거래의 무관세’를 선언한 후 주정부들은 요즘 부쩍 전자상거래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 주정부들은 행정기관이라고 뒷짐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자정부 서비스를 통해 정부가 발벗고 나서 기업의 세일즈를 지원하는 사례가 많다. 기업이 장사를 잘 해야 세금이 많이 걷히고 주민의 실업난도 해소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코네티컷주와 오하이오주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주내에 본사를 둔 기업의 명단과 사업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또 호텔 렌터카 항공스케줄 패키지여행 등 관광객을 위한 안내도 친절하게 하고 있다. 미국의 전자정부 정책은 국민을 ‘고객’으로 인식하고 고객에 대한 편리한 정부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원칙 아래 추진되고 있다. 따라서 단순한 비용절감이나 정부규모축소 같은 외형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고 전자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정부개혁운동으로 확대되고 있다. 〈워싱턴 실리콘밸리〓김학진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