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페레그린」 흥망사는 한편의 소설』

  • 입력 1998년 1월 13일 20시 04분


12일 파산 신청한 홍콩의 다국적 투자금융회사 페레그린은 송골매라는 뜻이다. 잘 나가던 홍콩을 상징하던 송골매의 추락은 홍콩인들에게 암울한 홍콩의 미래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비친다. 페레그린 제국의 흥망사는 한편의 소설이다. 이 소설의 첫번째 주인공은 채권팀장을 맡은 앙드레 리(한국명 이석진·李奭鎭·32). 국제변호사인 아버지와 프랑스계 캐나다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주로 미국에서 교육받은 한국계 미국인. 그는 금융투자업계에서 능력이 출중한 ‘신비의 인물’로 통한다. 다국적 증권회사인 리만 브라더스에서 투자팀을 이끌던 그는 94년 페레그린의 창업자이자 회장인 필립 토스에 의해 스카우트돼 페레그린사로 옮긴다. 앙드레는 공격적인 투자방식으로 이전까지 보수적인 투자와 금융중계를 하던 페레그린의 성격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그는 위험 부담이 큰 인도네시아 태국 미얀마 베트남에도 과감히 투자했으며 북한 대성은행과 합작해 평양에 대성―페레그린은행을 설립하는데도 앞장섰다. 페레그린 채권팀의 직원은 수명에 불과했으나 그가 팀을 맡은 이후 아시아 각국의 주재원을 포함, 2백명까지 늘어났다. 95,96년 페레그린이 올린 연간 수입의 절반 이상은 그가 이끈 팀이 창출했다. 덕분에 그는 한때 필립 토스와 함께 페레그린을 공동창업한 프란시스 렁을 제치고 ‘제2인자’로 불리기도 했다. 페레그린이 몰락한 직접 원인은 인도네시아 택시회사인 스테디 세이프에 대출해 준 미화 2억6천만달러 때문. 인도네시아 루피아화의 폭락은 페레그린의 몰락을 재촉하는 요인이 됐다. 신혼의 그는 96년 미화 5백만달러의 보너스를 받아 선망의 대상이 됐으나 이젠 회사몰락의 주범이 돼버렸다. 페레그린 흥망사의 두번째 주인공은 필립 토스회장(53). 영국태생으로 ‘가장 동양적인 서양인’이라는 평을 듣는 그는 영국의 전통있는 증권사 빅커스 다 코스타의 중견간부였던 아버지로부터 금융을 배웠다. 아버지가 근무하던 회사의 말단사원으로 입사, 경력을 쌓은 뒤 70년대초 홍콩 현지법인의 투자자문역을 맡는다. 그후 홍콩 부동산 재벌 리자청(李嘉誠)이 소유한 장강실업에 대한 평가보고서로 금융투자업계에서 일약 스타로 떠오른다. 리자청의 도움으로 중국계 ‘큰 손’들을 고객으로 확보한 그는 88년 중국인 동료 프란시스 렁과 함께 페레그린을 세운다. 잘 나가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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