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일출, 남태평양 섬 카리바시國이 가장 먼저 본다

  • 입력 1997년 12월 31일 18시 44분


무인(戊寅) 새해. 사는 장소와 모습이 다르듯 58억 지구인들은 98년 새해도 각각 다른 시간에 맞았다. 시차(時差) 때문.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98년 새해를 맞이한 나라는 어딜까. 일반인들에겐 이름조차 낯선 남태평양의 섬나라 키리바시공화국이 그 벅찬 기록의 현장이다. 키리바시 국민은 우리보다 3시간22분 앞서 새해를 맞이했다. 그리니치표준시(GMT)보다는 무려 12시간22분이 빨랐다. 키리바시는 국토면적 8백49㎢에 인구는 7만6천9백명에 불과한 작은 섬나라. 이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아침을 맞는 국가’라는 타이틀을 얻기까지는 사연이 있다. 2000년이 다가오면서 세계인들 사이에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이 어디냐는 의문이 많아진 것이 계기였다. 가장 먼저 ‘새로운 천년’을 맞으려는 호사가들이 그곳으로 몰려들 것은 분명한 일. 이 때문에 날짜변경선구역내에 위치한 남태평양 국가들은 영광의 타이틀을 차지하기 위해 팽팽한 신경전을 벌여왔다. 지금까지 날이 가장 먼저 밝아오는 지역으로 알려진 곳은 GMT보다 12시간 빠른 뉴질랜드의 작은 섬 차탐. 차탐과 이웃하고 있는 키리바시는 원래 차탐보다 22분 늦은 시간대를 이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날짜변경선이 키리바시를 관통하는 바람에 수도 타라와가 있는 서쪽섬은 가장 동쪽에 있는 캐롤라인섬보다 하루가 늦었다. 국토안에 ‘오늘’과 ‘내일’이 공존하는 이상한 나라였던 것이다. 95년 똑똑한 티토대통령이 결단을 내렸다. 날짜변경선을 동쪽으로 잡아당긴 것. 이에 따라 키리바시는 차탐을 22분 차로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먼저 아침을 맞는 국가’가 되었다. 전체 국민이 같은 날짜를 사용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얻었다.코코넛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보잘 것 없던 키리바시가 날짜변경선을 잘 만난 덕분에 2000년이 되면 엄청난 관광수입을 올려 팔자를 고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나오고 있다. 관광수입과 함께 영광의 타이틀까지 잃게 된 이웃 나라들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 차탐과 통가는 화가 나 날짜변경경선을 관리하는 영국의 왕립그리니치관측소에 항의했으나 그리니치는 키리바시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남태평양 섬나라까지 찾아가는 극성 관광객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그리니치는 사족을 달았다. 새해는 GMT를 기준으로 시작된다면서 키리바시 국민과 관광객들이 맞이한 98년 첫날은 엄밀히 말하면 아직 97년이라는 해석을 인터넷에 올렸기 때문이다. 〈강수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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