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위기를 겪고 있는 동남아 국가들에 대한 지원 방법을 놓고 미국 등 서방국가들과 일본 및 동남아국가연합(ASEAN)국가들이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9월 일본이 제의한 아시아통화기금(AMF) 설치에 대해 미국 캐나다와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최근 일제히 반대입장을 나타냈다. 표면적으로는 「IMF와 기능이 중복되며 기금모금이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
24,25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 앞서 열리고 있는 실무회의에서도 양측간의 신경전은 날카롭다. 이번 회의 의장국인 캐나다가 새로운 기금창설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자 양측간의 공방전이 한창이다.
서방국가들의 견제가 이처럼 예상외로 강력하자 일본은 10일 일단 한 발 물러서 AMF 창설제안을 철회할 뜻을 비치기도 했으나 아직 창설의 뜻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일본은 올해로 창설 30주년을 맞은 ASEAN국가들과 손잡고 공동기금 창설논의를 벌였다. ASEAN국가들은 IMF차관 제공과 함께 부과되는 조건들이 지나치게 서방국가들 위주인데 반발, 새 기금 창설에 적극적이다.
그러나 아시아 각국의 통화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아시아통화기금 창설이 일본 주도로 이루어질 경우 이 지역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급격히 증대될 것을 우려해 미국 주도하의 IMF가 팔을 걷어붙이고 반대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31일 IMF가 인도네시아에 2백30억달러의 긴급차관을 제공키로 한 것도 일본과 ASEAN에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발빠른 조치」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최근 미국의 F16 전투기 대신 러시아제 전투기를 구매키로 하는 등 탈미(脫美)움직임을 보인바 있다. 미국은 이번 일본 견제를 통해 인도네시아를 자신의 품안에 묶어두려는 의도까지 나타냈다는 평이다.
〈구자룡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