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은 러시아 거주 한인(고려인)들의 강제이주 60주년을 맞는 날이다. 때마침 강제이주 고려인들의 명단이 발굴되면서 고려인들의 현 실상이 새롭게 보이고 있다.
「일본인 간첩활동 방지」라는 미명아래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 스탈린과 몰로토프 소비에트인민위원회(현 국회)위원장이 서명한 종이 한 장으로 연해주지역 고려인 17만5천명이 졸지에 중앙아시아 사막으로 내팽개쳐졌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남다른 근면과 높은 교육열로 구소련 시절만해도 소수민족 중 가장 자립도가 높은 민족으로 부러움을 샀다. 당의 엄격한 통제 아래서도 한글 신문을 냈고 전통문화와 한민족의 피를 유지하기 위해 타민족과의 혼인도 피하는 등 「독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독립국가연합(CIS)의 50만 고려인들은 현지 국가의 정책변화, 그리고 젊은 세대의 등장으로 정체성 상실의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소련붕괴후 시장경제가 도입되면서 농업에 바탕을 둔 이들 삶의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농산품가격의 폭락에다 판로도 찾기 어렵기 때문. 과거 카자흐 우즈베크에서 집단농장 지배인 등으로 탄탄한 기반을 쌓았던 사람들조차 생활고에 쪼들린 나머지 모스크바로 상경, 일일노동자 등으로 전전하고 있다.
더구나 최근 불어닥친 민족주의 물결은 고려인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타지크에서는 소수민족탄압으로 90년 이후 8백여명이 살해됐고 5천여명이 탈출하지 못해 현지에 갇혀 있다.
『우리는 러시아인이기 때문에 러시아인으로서 살아야지요. 그러나 꼬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결코 장관이나 대사(大使)는 될 수 없어요』
직업외교관을 꿈꿔온 율리아 김(21·모스크바국제관계대학 3년)은 희망을 바꾸기로 했다. 지금은 외국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영어와 경제학 공부에 열심이다.
이민역사 1백년이 넘었지만 현직 장성은 1명만 있을 정도로 보이지 않은 차별 때문에 고려인들의 러시아사회 진출은 한계에 놓였다.
〈모스크바〓반병희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