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23일 제12회 세계 가톨릭청소년대회 미사에서 4세기전 발생한 성 바르톨로뮤 축일의 학살사건에 가톨릭교회가 개입됐음을 인정했다.
1백60개국 청소년 70여만명이 참가한 파리 부아 드 불로뉴경마장 미사에서 바오로2세는 『오늘 우리는 성 바르톨로뮤 축일의 불행한 학살을 잊을 수 없다』면서 『과거의 약점을 시인하는 것은 믿음을 강화해주는 정직하고 용기있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교황의 발언은 1572년 8월24일 발생한 성 바르톨로뮤 학살사건에 대한 로마교황청의 최초의 언급으로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복권한데 이은 일련의 「역사 바로잡기」로 평가된다.
이 학살사건은 당시 프랑스의 왕 샤를9세의 어머니였던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종교개혁가 칼뱅을 지지하는 위그노파 신자를 대량 살육한 사건으로 프랑스내 제4차 종교전쟁을 촉발시켰다.
당시 8월24일 밤부터 3일간 파리에서만 2천∼3천명을 학살한 종교 광풍은 지방으로 번져 10월까지 1만∼2만명의 희생자를 낳았다. 프랑스는 이후 앙리4세가 1598년 낭트칙령을 발표, 신교를 인정할 때까지 비극적인 싸움에 휘말렸다.
신교도인 정적 콜리니 제독을 제거하기 위해 학살의 단서를 제공한 카트린 드 메디시스는 앙리2세의 왕비로 자신이 낳은 프랑수아2세 샤를9세 앙리3세를 섭정하면서 30년간 사실상 권력을 장악했던 여걸.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얘기는 「여왕 마고」를 비롯한 수많은 영화와 문학작품의 소재가 됐었다. 교황 바오로2세는 이 학살사건을 언급하면서 『오직 용서만이 결실있는 대화에 이르게 할 수 있다』고 관용을 촉구하는 한편 『다른 종교전통에 속한다는 것이 오늘날 대립과 긴장의 요건이 되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요한 바오로2세는 23일 미사에서 캄보디아 러시아 등의 청소년 대표 10명에게 직접 세례를 베풀었으며 야외 미사가 시작되기전 한국의 鄭明勳(정명훈)씨가 지휘하는 연주회가 있었다.
〈파리〓김상영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