鄧小平(등소평)이 사망한 현시점에서 앞으로의 중국 정국을 전망할때 고려해야할 우선적 변수는 지도자의 위상이다. 毛澤東(모택동)과 등소평의 권력 승계 과정을 비교하는 것은 최고영도자가 된 江澤民(강택민)의 위상 파악에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모택동과 등소평의 권력승계 과정은 유사한 점이 있다. 두 지도자 모두 생전 계승자 지정이란 방식을 택했다. 모택동은 세명의 계승자를 차례로 지정했었다. 劉少奇(유소기)와 林彪(임표)는 결국 권력계승에 실패했음은 물론 커다란 정치적 충돌의 빌미가 됐다. 그가 세번째로 지명한 후계자는 華國鋒(화국봉)이었다. 등소평 역시 차례로 세사람을 후계자로 지명했다. 앞의 두사람인 胡耀邦(호요방)과 趙紫陽(조자양)은 정쟁에 의해 밀려났다. 강택민은 등소평이 세번째로 지명한 후계자다.
그러나 등소평과 강택민의 권력승계 과정은 다른 점이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등소평이 1989년11월 마지막 직위인 당중앙군사위 주석직을 사임한 후 공식적으론 은퇴, 강택민은 오랜 준비기간을 가졌다는 점이다.
다음으론 강택민은 일종의 집단후계체제 형식아래 권력승계를 했다는 점. 즉 강택민은 「동등하지만 수석이 존재하는」 영국내각과 유사한 형태 속에 주도적 위치를 구축, 결국 당총서기 군사위주석 국가주석이란권력의 3대 축을장악했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강택민에게 맞설 인사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며 당분간 중국 지도층내에 권력투쟁이 일어날 확률은 크지 않다. 그러면 중국의 통치방식은 앞으로 변할 것인가. 강택민은 군대와 경찰 정부기구 선전매체 등 일당국가의 모든 권력 및 통제기구를 장악하고 있다.
이는 그가 다른 의견을 가진 인사에게는 기회를 제공치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그렇다 해도 역시 그는 새로운 사조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정치체제를 옹호하는 세력을 확대할 수밖에 없다.
강택민체제의 가장 큰 불안 요소는 새로운 세대와의 갈등이다.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 1989년 이래 등소평 陳雲(진운)을 각각 거두로한 개혁파와 보수파의 암투로 인력구조에 여러차례 변화를 겪었고 신세대의 관리나 간부가 대거 승진했다.
신세대는 타분야에 있는 동년배 인사들과의 연계를 지향하고 있다. 다시 말해 중국은 불가피하게 개방과 정보시대에 진입하는 것이다. 자연히 정치참여 요구는 높아질 것이며 자유사상의 물결이 도래할 것이다.
등소평 사후의 정국은 과거의 냉전 구도에서 해왔던 균형의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며 앞으로 중국 외교의 중심은 경제문제로 이양될 전망이다.
이남웅<중문대 교수>
[약력]
57세.
미국 시카고대 박사.
현 홍콩중문대정치행정계 교수.
저서 「중국정치」 「중국공공정책」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