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진 기자] 「에이즈는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니다. 에이즈바이러스(HIV)를 박멸하는 것은 어렵지만 적어도 에이즈를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으로 바꿀 수 있다」.
최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4차 리트로바이러스 및 기회감염학회」에서 내려진 결론이다. 리트로바이러스란 RNA에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바이러스로 에이즈바이러스와 백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여기에 속한다. 기회감염은 2차 감염이라고도 하는데 에이즈 환자가 면역이 떨어져 다른 병에 걸리는 것을 말한다.
이 학회에 참가한 연세대의대 김준명교수(감염내과)는 『에이즈치료에 이처럼 서광이 비친 것은 지난해부터 임상실험 결과가 나온 프로티아제(단백질분해효소)억제제라는 새 약의 놀라운 효과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뉴욕의 한 병원에서 에이즈 환자 11명에게 이 약을 AZT 3TC 등 기존 에이즈치료제와 함께 4∼9개월간 쓴 결과 전부 혈액속에서 HIV가 나오지 않는 수준으로 치료됐다. 제네바의 한 병원에서도 말기 에이즈 환자 5명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이 약은 HIV가 세포속에서 단백질을 분해해 자기증식하는 것을 방해한다.
프로티아제억제제인 크릭시반을 개발한 미국 머크사의 에밀리오 에미니박사는 이 학회에서 『크릭시반을 판매한 지 반년만에 환자 12만5천여명이 사용했고 말기환자로부터 초기감염자까지 모든 에이즈환자에게 효과가 입증됐다』고 말했다.
프로티아제억제제의 특징은 종전 약과 달리 초기 에이즈환자에게 효과가 더 좋다는 것. 초기감염자에게 쓸 때 말기환자보다 효과가 수십배나 강력하다.
현재 프로티아제억제제를 개발,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사용승인을 받은 회사는 에보트 머크 로슈 등 세 군데다. 또 새 약 두가지가 FDA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특히 이번 학회에서 처음 발표된 넬피나비어는 기존 프로티아제억제제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8월 새 약이 시판된 이후 지난해말까지 에이즈로 인한 사망자수가 95년 같은 기간에 비해 세계적으로 30%가 줄었다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다만 문제는 약값이 비싸다는 것. 김교수는 『1년치 약값이 현재 미국에서 1천만∼2천만원이나 한다』며 『환자들이 부담없이 구입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