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윤성훈기자 이라크 현지르포」
이라크는 지구 대부분 국가들이 21세기를 향하고 있는 세기말의 문턱에서 시간을 거꾸로 돌려 과거로 끝없이 퇴락하고 있었다.
지난 9월 미군의 미사일 공격이후 지난달 23일부터 28일까지 6일 동안 둘러 본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는 실로 한 나라에 취해진 경제봉쇄조치(엠바고)가 얼마만큼 커다란 타격을 주는 여실히 보여줬다.
지난 90년 쿠웨이트 침공 이후 유엔 결의 661조에 의거, 이라크에 취해진 엠바고 6년.
폐허만을 남긴 이란과의 8년전쟁 뒤에 이어진 이 봉쇄조치는 과거 중동 부국이었던 이라크를 순식간에 가난한 사막의 빈국으로 전락시켰다.
이라크는 해운 및 비행금지조치와 통신두절 등으로 말미암아 중세의 암흑국가처럼 외부세계와 철저히 단절돼 있었다.
암만을 출발, 국경초소 및 수십개의 검문초소를 거쳐 바그다드에 도착하는데 걸린 시간은 장장 15시간. 과거에는 비행기를 이용할 경우 2시간 거리에 불과했다.
23일 새벽에 떠나 이날 밤에 도착한 바그다드는 조용하지만 음울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그것은 전쟁이 도시에 심어주는 일종의 긴장감과 불안감이었다.
삼엄한 경계를 펴는 군인들과 부근 언덕에 포진해 있는 전차 그리고 멀리 만수르 호텔 주위 숲속에 젓가락을 찔러 놓은 듯한 대공포의 포신들이 언뜻 비쳤다.
그리고 유사 이래 언제나처럼 총성없는 전쟁과 같은 이 엠바고에서 가장 먼저 희생되는 대상은 어린이들이었다.
이라크정부는 엠바고로 인해 지난 90년 8월부터 올해 9월 말까지 모두 74만8천1백33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중 28만4천4백17명이 5세 이하의 유아들. 이라크정부의 공식통계 자료에 따르면 사망자수가 엠바고 이전 89년 한해에 2만7천3백34명이었고 △90년 3만2천4백64 △91년 8만5천9백42명이었으나 92년부터 12만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이같은 통계상의 수치는 빈민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는 사담시티 등 시내 외곽지역의 초등학교 및 병원에서 쉽게 확인됐다.
그 곳에 시우랏 알 에쉬리(20세기 혁명)라는 초등학교와 사디 시엘 종합병원이 있었다.
이 초등학교의 인원은 1학년에서 6학년까지 모두 9백20명. 우리나라 시골의 낡고 기울어져 가는 마을회관을 연상시키는 학교였다. 수도꼭지라곤 단 1개뿐이고 창문은 깨지고 문짝은 떨어져 있었다.
압둘 임마 자바아르 교장(44)은 『엠바고로 인해 학교의 급식이 중단되면서 궁핍한 가정의 상당수 학생들이 점심을 굶고 있다』며 도움을 호소했다.
실제 바그다드 소재 초등학교 2천명 학생중 36.2%가 아침을 굶고 있고 이부제 학교 오후 등교생의 경우 10.1%가 아침과 점심을 모두 굶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루에 1천명의 환자가 찾아드는 시엘 병원의 2층 소아과 병동은 이 병원에서 유일하게 작동되는 1대의 산소탱크에 태어난지 32시간이 채 안된 영아가 생명을 힘겹게 의지하고 있었다.
인큐베이터가 10대가 있지만 부품조달이 어려워 작동하고 있는 것은 불과 2, 3대였다. 그러나 이같은 경제적 궁핍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사회가 만성적으로 불안상태에 빠져들면서 이혼율이 수직 증가하고 가정이 파괴되는 등 극심한 사회심리적 질환의 등장이다.
엠바고가 계속되면서 아동들은 불안과 초조 그리고 자신감의 상실, 공격성, 수면불안, 고립감 및 학습능력의 저하에 휩싸이게 됐고 이는 이라크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비록 이라크에 대한 엠바고가 침략국가에 대한 국제사회의 준엄한 심판의 양상을 띨지라도 그것은 한 국가의 국민 전체에 대한 비인간적인 고문행위라는게 사담 후세인 대통령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의 한결같은 지적이었다.